강화 석모도 보문사
<창건과 전설>
선덕여왕 4년(635년)에 회정대사가 금강산에서 수행하던 중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이곳으로 내려와 창건했다고 한다. 관세음보살이 머무르고 있다는 산의 이름을 따서 절 뒷산의 이름을 낙가산(洛迦山)이라고 하고, 관음보살의 원력이 광대무변함을 상징하여 보문사(普門寺)라고 이름지었다고 한다. 양양 낙산사 홍련암, 남해 금산 보리암과 함께 3대 해상 관음기도도량이다. 여수 향일암을 더해 4대 관음기도도량이라고도 한다.
창건한 지 14년 만인 649년 석가모니 부처님과 미륵보살 등 스물두 분의 석상을 바다에서 건져 올려 석굴 법당에 모시고 나한전을 조성했다. 나한전에서는 24시간 스님들의 기도가 이어지고 있어 누구나 언제든지 기도할 수 있다하여 보문사를 나한도량이리고도 하다.
주차비 : 이천 원
입장료 : 이천 원
공양미, 향, 초 등 공양물은 불교용품점에서 구매
<보문사 경내 안내도>
7월 30일 10:00시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주차장에서 바라본 눈썹바위.
그 밑에 마애관세음보살상이 있다.
매표소와 일주문.
일주문에서 돌아보면 바다가 펼쳐진다.
더위 때문에 극락보전까지 가는 시멘트길도 힘이 든다.
오백나한과 와불전은 2009년 천인대에 조성되었다.
천인대는 길이 40M, 폭 5M의 큰 바위로 창건 당시 인도의 한 큰스님이 불상을 모시고 이곳을로 날아왔다고 한다.
법회 장소로도 사용되었는데 일천명이 능히 앉을 수 있다고 해서 천인대(千人臺)라고 하였다.
전체적인 모습은 진신사리가 봉안된 33관음보탑을 중앙에 두고 오백나한이 감싸는 형상이다.
나한은 부처님의 제자로 아라한과를 증득한 존자를 말하며, 해탈하여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보문사의 오백나한상은 백옥으로 되어 있으며, 각각의 모습을 자유분방하게 개성적으로 표현하여 나한상마다 표정과 모습이 다 다르다.
독특한 캐릭터의 나한상들
와불전(臥佛殿)
와불은 열반하는 부처의 누워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1980년에 조성을 시작하여 2009년 3월에 완료하였다.
와불의 뒤로 공간이 있어 주위를 돌면서 참배할 수 있다.
보통 세 바퀴를 돈다.
너비 13.5M, 높이 2M,
석가모니의 열반
아난에게 사라(Sara)나무 밑에 침상을 준비하라고 이르시고 부처님께서는 북쪽으로 머리를 두고 얼굴은 서쪽을 향하고 오른쪽 옆구리를 땅에 대고 조용히 누우셨다. 그리고 아난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오늘밤 자정 무렵 열반에 들리라. 나는 이제 80세가 되었구나. 비유컨대, 낡은 수레가 움직일 수 없음과 같을지니라. 육신이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니 만큼, 늙고 병들어 없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내가 이미 가르치지 않았던가. 모든 형상 있는 것들은 다 사라져 없어지리라고. 그러나 여래는 육신이 아닌 깨달음의 지혜이니라. 내가 가르친 진리는 언제나 너희들과 함께 하리라."
제자들을 돌아보시면서 마지막 가르침을 펴시었다.
"너희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의지하여라. 진리를 등불로 삼고 진리를 의지하여라. 이밖에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라.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라.(自歸依 法歸依 自燈明 法燈明 諸行無常 不放逸精進)"
열반하시기 전 마지막 남긴 유훈(열반송)을 간략히 '자등명 법등명'이라고 한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평안히 열반에 드셨다.
부처님께서 80세 되던 해 2월 15일(음력) 한밤중이었다.
- 보문사 안내 게시판에서
석굴법당(나한전), 수령 500년의 향나무, 맷돌, 삼성각, 극락보전이 보인다.
석굴법당 나한전
보문사를 창건한 지 14년이 지난 진덕여왕 3년(649) 어느 날, 한 어부가 바다에 그물을 던졌는데 사람 모양의 돌덩이 22개가 한꺼번에 걸려 올라왔다. 버리고 다시 그물을 던졌지만 이번에도 돌멩이가 걸려 올라와 물에 던져버리고 돌아왔다. 그날 밤 꿈에 노승이 나타나 버린 돌이 천축국에서 보낸 귀중한 불상이니 건져서 명산에 봉안해 달라고 부탁했다.
다음 날 22개의 돌을 건져올려 깨끗이 씻어 꿈에 본 석굴로 옮겼다. 그 순간 석굴 안에서 독경 소리와 향 냄새가 퍼져 나오고 일부러 만든 듯한 천연의 좌대가 나타나 그 위에 차례로 모셨다. 근래에 이 석상은 우리나라 화강암이 아닌 인도산 돌로 만들어졌다고 확인 되었다.
중앙에 석가모니불,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이 모셔져 있고 좌우로 18나한, 나반존자(獨聖修, 獨聖尊者-우리 불교에만 존재)가 모셔져 있다. 그런데 감실은 중앙 3개, 좌우 각각 10개로 모두 23개다.
극락보전과 봉향각 사이로 마애불 가는 계단길(계단 수 419)이 나 있다.
거리는 짧지만 경사가 심해 지그재그로 되어 있어 제법 힘이 든다.
용왕단
소원지를 담은 병들이 매달려 있다.
마애불로 오르다 보면 왼쪽으로 바다가 활짝 펼쳐진다.
마음까지 활짝 열려 탈속의 경지에 이른 듯하다.
서해안에서 가장 멋진 일몰 광경을 연출한다는데 지금은 한낮이다.
따가운 햇살 속에서도 넓게 펼쳐진 바다를 보면 마음이 상쾌해 진다.
보문사의 참 맛이다.
보문사를 찾는 사람들의 최종 목적지는 이 마애관세음보살상일 것이다.
소문난 기도처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산과 바다, 하늘, 사람이 하나가 되는 공간이다.
마애관음좌상은 1928년 배선주 주지 스님이 금강산 표훈사의 이화응 스님과 더불어 이곳에 새긴 것으로, 높이 920cm, 너비 330cm에 달하는 거상(巨像)입니다. 크기를 척수로 환산하면 높이 32척에 너비가 11척이 되는데 이것은 관음보살의 32응신(應身)과 11면(面)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관음보살은 눈썹바위 아래의 바위면에 새겨 모셨는데, 눈썹바위가 지붕처럼 돌출되어 있어 비바람으로부터 관음보살을 가려주고 있는 형태입니다. 관음보살은 네모진 얼굴에 커다란 보관을 쓰고 두 손을 모아 정성스레 졍병(淨甁)을 받쳐 들고 연화대좌에 앉아 계십니다. 얼굴에 비해 다소 크게 느껴지는 코, 입, 귀는 투박하지만 서민적이라 보는 사람의 마음을 푸근하게 합니다. 백호도 이마 사이에 솟아 있으며, 가슴에는 '만(卍)'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불의(佛衣)는 양쪽 어깨를 모두 감싸도록 입는 통견(通絹)이 무릎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연화대좌 왼편에는'조불화응선사(造佛華應禪師)', 반대편에는 '화엄회상팔부사왕중(華嚴會上八部四王衆)', '나무화엄회상욕색제천중(南無華嚴會上欲色諸天衆)', '화엄회상호법선신중(華嚴會上護法善神衆)'의 글자가 세 줄로 새겨져 있다.
-<보문사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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