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삼의 시를 찾아서 / 이숭원 / 태학사 / 2015.12.15.
가난한 대학생 시절 헌책방에서 구입한 교재에 <오늘>이라는 시가 연필로 쓰여져 있었다.
책을 판 사람은 시인처럼 가난하고 술을 좋아하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시인을 찾아서1, 신경림>에 나오는 이야기.
소학교 다니는 딸의 소풍에 따라가서 언덕 뒤에서 큰 돌을 가슴에 얹어놓고 잠을 잤다는 시인 김종삼. 한참 찾던 딸이 그 모습을 보고 놀라서 물으니 "응, 하늘로 날아갈 것 같아서 그래"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수능 모의고사 교재에서 보았던 <5학년 1반>
양지바른 곳에서 늦가을 저물녘 햇살을 쬐는 것처럼 온기와 쓸쓸함이 함께 묻어났다.
최근에 신문을 보다가 시집 <북 치는 소년>을 소개한 글을 보았다. 아련한 감정에 끌려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보았으나 없었다. 대신 이 책을 빌렸다.
중학교 1학년 때 읽은 <술래잡기>가 인연이 되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어릴 적 경험의 중요함과 학자의 집요한 탐구정신이 새삼 가슴에 새겨진다. 작가는 시인의 삶과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안내자 역할을 한다.
시인의 대표작은 <북 치는 소년>이라고 생각한다. 길음성당 묘지의 시비에도 이 작품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내용 없는 아름다움"을 글쓴이는 내용 없던 그의 삶, 허무주의로 파악한다.
그 허무주의는 <민간인>과 같은 전쟁 난민 체험과 자신보다 11살 어린 동생(김종수)과 친구 전봉래(전봉건의 형)의 죽음 등에서 연유한다. 이러한 허무주의는 시인을 술과 음악, 시에 빠져들게 한다. 클래식과 막걸리에 빠져 살았던 천상병의 삶이 겹쳐진다.
방송국 음악담당직 수입을 모두 술로 탕진하고 결국에는 김관식처럼 술병으로 죽는다. <오늘>에서 "두 홉들이 소주 반만 먹자. / 반은 버리자."라는 구절은 두보의 <등고>에 나오는 "潦倒新停濁酒杯 늙고 쇠약한 몸이라 새로이 탁주마저 끊어야 한다네"보다 더 슬픈 것 같다.
이러한 허무주의 속에서도 종교의 경건함과 음악의 아름다움에서 기원한 인간의 순수함에 대한 믿음은 일생에 걸쳐 그의 시에 지속된다. 그렇지만 허무주의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결국은 따스함 속에서도 연민과 슬픔이 배어나온다.
미구에 이른 아침 / 하늘을 파헤치는 스콥 소리// 하늘 속/ 맑은/ 변두리/ 새 소리 하나/ 물방울 소리 하나// 마음 한 줄기 비추이는/ 라산스카 <라산스카> 전문
예천읍내에서 예천교를 건너 한천을 따라 걸으면 길옆으로 시비가 죽 늘어서 있다. 한 편, 한 편 읽다 보면 시선집 한 권쯤 읽은 느낌이 든다. 그중에 <묵화>가 있었다.
외롭고 고단하게 살았지만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노래한 시인.
말을 아낄 줄 알았고
음악 같은, 그림 같은 시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고 떠난 시인.
그가 즐겨듣던 음악과 함께 종종 만나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