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 2019.01.07. 12:20-14:40거북바위가 있는 수정봉
- 법주사 탐방 후 세조길 거쳐 복천암까지 왕복
1464년. 세조는 피부병이 심해지자 정신적 의지처였던 신미대사가 있는 법주사를 찾아가 요양을 하였다.
테크와 야자매트로 깔끔하게 단장해 놓아 걷기에 편했다.
법주사는 3000여 명의 스님과 60여 채의 건물이 있었던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이곳은 법주사 전성기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으로, 세조가 이곳에 머물며 참회했던 장소이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지고 현재는 터만 남아 있다.
세조가 그늘에 앉아 생각에 잠겼던 장소로 오가는 사람들이 비바람과 한낮의 더위를 피하던 장소이다.
수정봉 거북바위는 법주사 청동미륵대불 뒤에 있다.
우암 송시열이 쓴 속리산사실기비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당 태종이 세수를 하려는데 대야에 큰 거북의 그림자가 보였다.
이에 놀란 태종은 한반도에 큰 거북이 있어서 중국에 재물과 인재들이 모이지 않고, 그 기운이 한반도로 흘러들어간다고 생각하고 그 거북을 찾다가 이곳 수정봉에서 거북바위를 발견하고 그 목을 자르고, 등 위에 탑을 세워 기운을 누르려고 했다고 한다.
후에 이를 알게 된 사람들이 목을 붙이고 탑을 헐어버렸다고 한다.
저수지(법주사 상수원지)에서 본 모습으로 가장 높은 봉우리가 수정봉이다.
조선 7대왕 세조가 법주사에서 국운 번창을 기원하는 대법회를 열고 신미대사가 있는 복천암으로 가던 중 목욕을 하던 곳이라고 한다.
목욕을 하던 세조에게 약사여래의 명을 받고 온 월광태자라는 미소년이 나타나 피부병이 곧 완쾌될 것이라고 말 한 후 사라졌다.
말대로 피부병이 완쾌되었다고 한다.
목욕소 위쪽을 가로지르는 하얀 바위는 '마두암(馬頭巖)'이라고 불리는데 세조가 목욕을 할 때 말 한 마리가 위쪽에서 흙탕물을 일으키며 물을 마시다가 호위장군의 고함에 놀라 돌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내려온다.
이뭣고다리 맞은 편에는 시심마교(是甚麽, 선종의 화두 중 가장 근원적인 화두 중 하나.)라고 새겨져 있다.
세조길 종점. 세심정에서 가깝지만 경사가 심하다.
고려 31대 공민왕이 복천암을 다녀간 후 이곳 극락보전에 무량수라는 편액을 손수 써서 내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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