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 평전 / 박석무 / 민음사 / 2019.03.21.
이제라도 읽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왜 이제서야 읽었을까 후회를 해야할까.
읽으면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무거움보다는 안정감이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포자기하지 않고 글과 학문을 통해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이 나를 압도했다.
정약용의 호는 사암(俟菴)이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기다릴 사, 암자 암. 새로운 미래를 기다리며 과골삼천(踝骨三穿, 복숭아뼈에 세 번 구멍이 나다)의 노력을 기울였던 사람.
2012년 동양인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인물로 뽑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1. "공정과 청렴으로 정성 바치기 원하옵니다. 公廉願效誠"
문과 급제 후 쓴 시의 한 구절이다.
'공정과 청렴'은 다산의 평생 신념이자 핵심 이념이었다.
2. 이를 바탕으로 '애민과 애국'을 실천해 나갔다.
목민관이란 백성을 위해서 존재하지 백성들이 목민관을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牧爲民有 民不爲牧生-<원목原牧>)
중민수법(重民守法) - 백성을 중히 여기고 법을 지킨다.애민과 애국나라와 백성
3. 민중의 힘 발견 - 민중적 경학(民衆的 經學, 鄭寅普)
"백성 편히 다스릴 정책 알고 싶다면 / 농부에게 묻는 것이 첫 번째라오" -<유림만보>
"밝고 환한 들판의 농사꾼 백성들 / 동작들 어찌하여 저리도 호일(호방)할까"-<고시27수>
'그 기색 살펴보니 즐겁기 짝이 없어 / 마음이 몸의 노예 되지 않았네" -<타맥행>
"천하고 힘없는 백성들이지만 산처럼 높고 무거운 것 또한 백성들이다. ……… 백성들을 이고 투쟁하게 되면 아무리 높은 上司라도 굽히지 않을 사람이 없다."-<목민심서>
4. 성리학의 비현실성을 비판하고 실천 철학인 실사구시로 사상계의 변혁을 꾀하다.
주자는 사단(인의예지)은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이치(在心之理)라고 했으나 다산은 일로 행한 뒤에야 그 명칭이 나온다(行事以後得名)고 하여 행을 중시했다.
인간의 본성과 하늘의 이치를 연구하고 실천하는 것이 성리학이며 공자와 주자도 나라가 처한 현실적 당면 문제에 집중했다.
착한 성품을 행동으로 옮기면 덕이 된다.
5. 당파에 얽매이지 않았다.
정조와의 문답에서 남인이면서도 이이의 학설을 지지하여 남인에게 배척당했다.
기란 의와 도에 짝하는 것으로 의와 도가 없다면 기는 시들어 버린다. 이것은 이이가 가르쳐 준 것이다.
이발(이황)-동인, 기발(이이)-서인.
이이의 개혁적인 사상이 송익필, 김장생, 송시열을 거치면서 수구적인 예론으로 바뀌었다.
해배 후 김매순, 홍석주 등 노론 당파의 사람들과 토론을 통해 자신의 저서를 교정했다.
천주교, 중국, 일본의 서적들도 섭렵했으며 혜장 등 승려들과도 소통했다.
6. 사대주의를 배격하고 자아 발견을 통해 문화와 역사의 주체성을 확립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중국의 경전을 바로잡다.
주체적인 시론과 토속어 사용-한글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한계
7. 실사구시의 삶과 진보적 성향
주교(배다리). 화성 축조 - 10년 공사를 2년 9개월에 완성. 4만냥 비용절감. 유네스코 문화유산
인간의 성품을 상품, 중품. 하품으로 나누는 성삼품설을 부인하고 성품은 단지 환경과 교육에 따라 달라진다고 주장.
여전제<전론> - 경세유표 정전제
맥론, 상론, 풍수론 등 배격
온갖 공업 기술의 정교함은 그 근본이 수학에 있다.
비본 경세유표와 홍임 모녀는 과장된 이야기다.
"사나이는 가슴속에 항상 가을 매가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듯한 기상을 품고서 천지를 조그마하게 보고, 우주도 가볍게 손으로 요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옳다"-진학유가계(贐學游家誡)
"슬픔은 짧고 기쁨은 길었다(戚短歡長)"-회근시
읽고 난 후 덧붙이고 싶은 말.
본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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