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The narrow road to the deep north)’은 바쇼의 기행문 ‘奥の細道(おくのほそみち오쿠노 호소미치, 오쿠-일본 동북부의 오지-로 가는 좁은 길)’를 영역한 것이다. 2,400km, 150일의 여정을 5년 동안 다듬고 고쳐 썼다고 한다. 하이쿠의 성인으로 불리는 바쇼는 하이쿠를 통해 인생을 탐구했다. 시가 곧 삶이었으며, 삶의 결과가 곧 시였다. 바쇼는 대상들을 직접 보기 위해 수차례의 도보여행을 했다.
*고타 대령과 나카무라 소령의 대화(161-164쪽): <오쿠로 가는 좁은 길>에 일본 정신의 천재성이 요약되어 있고 천황의 뜻에 따른 버마철도 건설이 일본 정신이며 바쇼를 세계에 알리게 될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이다.
- 이때 시는 샤부(필로폰)와 같다. 광신, 신화, 비현실
*335번 포로에게-포로였던 아버지, 실화를 바탕으로 하여 이에 관한 이야기가 매우 생생하다.
*제시(提撕)-"어머니, 그들은 시를 써요. 파울 첼란"
-현실과 유리된 관념의 세계, ‘죽음의 푸가’(모순과 비극의 증폭, 자살)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각 장의 제목으로 나오는 바쇼와 잇사의 하이쿠, 테니슨의 *율리시즈-끊임없는 도전(직선), *시스이의 임종시(원, 45쪽)-영원한 회귀, 선(線)의 안티테제, 키플링의 시 등 많은 시가 나오고 도리고, 고타, 나카무라도 시 애호가이다. 모두 고전시를 좋아한다. 본질이라는 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라는 뜻일까?
도리고 에번스 대령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지만 등장하는 인물 하나하나가 모두 주인공처럼 느껴진다. 장면마다 중심인물의 시점으로 써나가서 그런 것 같다. 부조리한 상황에서의 슬픈 사랑과 전쟁의 참상을 다각도로 조명하여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조선인 최상민(고아나, 산야 아키라)이 등장하여 관심이 더 갔다. 중반을 넘기면서 읽는 재미가 느껴졌다.
소설은 도리고와 에이미의 사랑,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시암(태국)-버마 국경의 철도 건설에 동원된 호주 포로가 겪은 이야기가 두 축을 이룬다. 사랑 이야기가 조금 어렵다.
도리고와 에이미의 사랑은 고모와 조카라는 관계 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다(역마-이모와 조카). 부조리한 상황이 주어진 것이다, 사회통념과 개인의 욕망이 충돌할 때 당사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왜 태초에는 항상 빛이 있는 걸까? 도리고 에번스에게 최초의 기억은 어머니, 할머니와 함께 앉아 있던 교회 안으로 햇빛이 쏟아지던 모습이었다. 나무로 지은 교회, 눈부신 빛, 자신을 반기는 그 초월적인 빛 속을 아장아장 들락거리다가 여자들의 품에 안기던 자신. 그를 사랑하던 여자들, 바다에 들어갔다가 해변으로 돌아오는 것과 비슷했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첫 단락이다. 도리고와 에이미의 사랑을 이끌어 가는 모티프다. 빛의 의미는? 일단은 새로운 세계를 드러내는 구실을 한다.
“도리고에게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키스가 마음속의 진심을 그녀에게 한 번도 말해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모든 말이 가면이었다. 그녀는 키스가 진짜 이야기를 해주기를 정말 바란다고 도리고에게 말하고 싶었다. 단 한 가지라도 좋으니 진짜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다고.(168쪽)”-허위를 밝히는 기능.
도리고는 엘라를 남을 통해 세상을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며 답답해 한다.
“신성한 태양왕이 정점에 존재하던 파라오 시대의 노예처럼 살았던 경험 때문에, 그는 비현실이 삶에서 가장 커다란 힘을 쥐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금 자신의 삶 역시 하나의 거대한 비현실이었다. 이 안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모든 것, 즉 직업적인 포부, 출세욕, 사무실의 크기나 벽지 색깔, 자신만의 주차공간 같은 것들에 엄청난 의미가 부여되었으며, 중요한 모든 것, 즉 즐거움, 기쁨, 우정, 사랑 같은 것들은 왠지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되었다. 그래서 대개는 인생이 지루해졌고, 전체적으로 이상해졌다.(469)”-허위의 삶
“똑같은 실패를 영원히 반복하는 것. 어쩌면 그는 이미 지옥에 와 있는 것 같았다. 독약을 마시고 죽어가면서 죽지 않는 영혼을 발견한 소크라테스처럼, 도리고는 자신의 진실한 사랑이 없는 곳에서, 그러니까 에이미가 아닌 여자들에게서 그 사랑의 대상을 발견했다.(470쪽)”-시지포스, 탄탈로스
“그는 사흘 동안 사경을 헤매며 평생 가장 놀라운 꿈에 사로잡혔다. 빛이 흘러넘치는 교회에 그가 에이미와 함께 앉아 있었다. 눈이 멀 것 같이 밝고 아름다운 빛이었다. 그는 아장거리는 걸음으로 서성거리며 초월적인 망각의 세계를 드나들다가 여자들의 품에 안겼다. 그는 공중을 날면서 에이미의 벌거벗은 등에서 나던 체취를 느꼈고, 계속 높이높이 솟아올랐다. 그동안 온 나라는 미리 그를 애도할 준비를 하면서 동시에 청년들의 타락에 대해 논란을 벌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전 세대의 숭고한 영웅들과 지금 세대의 비열하고 살인적인 범죄성을 비교했다. 정작 그는 자신의 삶이 이제 막 시작했음을 깨닫고 기가 막혔다.(528-9쪽)”
-지금까지의 삶은? 빛은 환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전쟁이 끝난 후 전범 처리를 보면서 현재 일본인의 의식구조의 원형을 찾을 수 있었다.
"일본 귀족들과 연줄이 있는 장교는 석방되어 미국을 위해 일하고 조선인, 대만인 같은 약한 자들은 교수형에 처해졌다.(395)"
"우리의 행동이 모두 천황의 의지를 따른 것에 불과하다면, 천황은 왜 아직도 자유의 몸인가? 미국인들은 왜 천황을 지지하면서 우리는 왜 교수대에 세우는가? 우리는 그저 천황의 도구였을 뿐인데.(396쪽)"
-일본 군국주의자들은 천황의 의지를 내세워 사람들은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런데 종전 후 천황은 벌을 받지 않았고, 고타 대령, 나카무라 소령 등도 떳떳하게 사회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혈액은행 창립자 나이토 료이치, 731부대) 오히려 자신들도 피해자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 그러니까 단지 임무를 수행했을 뿐이므로 결코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자고 마음을 다진, 긍지 높고 선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 역시 스스로를 전쟁의 피해자로 보았다.(439쪽)
”-아이히만, 오퍼레이션 피날레. 대동아공영권-백인으로부터 아시아를 해방시킨 시혜자. 이런 사람들의 후손이 지금 일본을 이끌고 있다. 종전 무렵 일본이 천황제를 유지하기 위해 애쓴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한 달에 50엔을 받고 포로를 감시하는 경비병인 최상민은 고타 대령의 진술 때문에 결국 교수형을 당한다. “사형수로 죽음을 기다리면서 최상민은 자기만의 생각을 갖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427쪽)” 조선인인지 일본인인지 정체성도 모호하며 자기만의 생각을 갖지 못해 안타까워하며 월급 50엔을 생각하며 죽음을 맞이한 최상민. 우리의 현재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반해 고타는 선 수행가로 생불 수련을 하고, 죽음을 앞두고 나카무라는 우주적 선으로 여겼던 천황에 대해 잠시 갈등하지만 자신의 일생을 착한 남자의 일생으로 생각하겠다고 다짐한다. 그의 임종시 “겨울 얼음이/ 녹아 맑은 물이 되고/ 내 마음도 맑도다.”를 읽으면서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영화 ‘밀양’이 떠올랐다.
-“행복한 사람에게는 과거가 없고, 불행한 사람에게는 과거만 있다.(45쪽)” 전범과 피해자의 삶 대조.
“시는 법칙이 아닙니다. 운명이 아니에요, 대령님.
그렇지. 도리고 에번스가 말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는 자신에게는 시가 대략 운명과 같은 것임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305쪽).
”기억이 진정한 정의입니다. 대령님.
아니면 새로운 공포의 창조자일 수도 있지. 기억은 정의와 비슷할 뿐이야. 보녹스. 사람들에게 자신이 옳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또 하나의 잘못된 생각이니까(305쪽).
-야스쿠니신사에 있는 ‘증기기관차 C5631호’, 기억의 조작
토끼 핸드릭스의 스케치북 문제(도리고와 보녹스의 견해 차이)
“그리고 생각했다. 세상은 존재한다. 그냥 존재해.(264쪽)
마지막 장을 여는 시 “이 세상에서/우리는 지옥의 지붕을 걷는다./꽃을 응시하면서. 잇사”
-절망에 빠지지 말자.
아미(친구), 아망트(연인), 아무르(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