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베토벤의 위대한 생애

마음닦기/독서

by 빛살 2020. 1. 6. 06:27

본문

베토벤의 위대한 생애/로맹롤랑/이휘양·이성삼/두로/1996.09.10.

옳게, 또 떳떳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오직 그러한 사실만으로써 능히 불행을 견디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입증하고 싶다(1819.2.1. 비인 시청에 보낸 편지에서)

 

본문은 '베토벤의 생애 / 제9교향곡 / 베토벤의 창작 세계 / 베토벤의 편지 / 하일리겐시타트의 유서'로 구성되어있다.

 

베토벤은 본의 가난한 집 다락방에서 태어났다(1770.12.16).

할아버지는 귀족의 악장을 지냈으며 아버지는 주정뱅이 테너 가수, 어머니는 하녀로 보잘것없는 집안이다.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죽고(1787년), 베토벤도 유전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다. 1796년과 1800년 사이에 귓병이 발생, 1802년에는 거의 절망적인 상태에 이른다. 그해 10월 6일 의사의 권유로 비인에서 가까운 하일리겐시타트에서 요양 중 나아질 가능성이 없자 카알과 요한 두 동생에게 유서를 쓴다(하일리겐시타트의 유서, 사후에 발견됨).

1814년경 완전한 귀머거리 상태가 된다. 그의 거의 모든 작품이 귀가 어두워지기 시작한 후에 쓴 것이다.

 

음악인에게는 치명적인 귓병 때문에 사람들을 피하게 되고 자연을 사람보다 더 사랑하게 되었다. '대자연을 산책하는 것은 신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내면에 몰두하여 그에게서 사라져버린 하나의 세계를 그의 정신 속에서 재창조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전원교향곡이다. 

전원교향곡을 작곡 중인 베토벤(제6교향곡, 1808년, 34세)-A.Brook(1834년 제작)

 

이러한 경향은 강한 자존심과 고집불통의 성격을 가진 기인이라는 세속의 평가를 받았으나 1814년(44세), 비인회의에서 '유럽의 영광의 인사'로 선출될 정도로 인정을 받았다.

 

프랑스혁명에 많은 영향을 받아 공화주의자로 자처하고 민주주의를 신봉했으며 자유와 평등을 추구했다. 한 때 나폴레옹에 심취하여 영웅(  Eroica )교향곡(일명 보나파르트, 1804년, 제3교향곡)을 작곡했으나 그가 황제에 오르자 실망하게 된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호머, 플루타르크, 세익스피어, 괴테, 실러 등의 작품을 탐독하고 공화주의자인 브루투스와 플라톤과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 그리고 그리스도를 신봉하였다.

 

베토벤은 구속받지 않은 - 아마도, 당시의 독일 사상계의 유일하였던 - 위대한 목소리였던 것이다.

그가 비난한 것은 기다란 소송 수속 때문에 거추장스럽고 강압적이며 비굴한 재판 제도, 경찰권의 남용, 개인의 창의를 말살하고 행동을 속박하는 몰상식하고 무능한 관료주의, 가장 높은 지위를 차지하기에 급급한 부패한 귀족 계급의 특권 따위였다.

그는 괴로움을 겪으며 싸우는 사람들의 최대, 최선의 벗이다.

 

그의 음악은 제9교향곡(합창교향곡, 1824년 봄)으로 완성된다.

실러의 '환희의 송가'를 읽고 1793년경부터 곡을 붙이려고 생각했다.

 

1824년 5월 7일 비인에서 '장엄미사곡'과 '제9교향곡'이 초연되었을 때 다섯 번의 갈채를 받았다. 당시 황족도 3번의 갈채밖에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임석한 경관이 갈채를 제지했다고 한다. 공연이 끝나고 베토벤은 기절했다.

 

1827년 3월 26일 사망.  그의 전 생애는 폭풍우의 하루와 유사하다. 동생 카알의 아들에게 유산을 상속한다.

 

평생 독신으로 지냈으나 귀족 여인들과의 인연도 있었다.

 

줄리엣타 기챠르디(월광소나타 작품번호 제27번,1802, 헌정)

테레제 폰 브룬스빅(therese von brunswick)과는 1806년 5월 약혼했으나 신분의 차이 등으로 파혼. 열정소나타(그녀의 오빠 프란츠에게 헌정), 소나타24번(작품번호 78번, 1809년, 테레제 소나타, 헌정)

테레제 폰 브룬스빅

 

마리에 폰 에르되디 백작부인 등과의 인연이 있으며 의사 베겔레와 목사 아멘다와 끝까지 우정을 나눴다. 현악 사중주곡(작품번호 18의 제1, 목사 아멘다에게 헌정).

 

인생을 위한 예술을 창작한 최초의 음악가.

자신의 힘과 천재에 취해 자기의 정신과 경험을 바로 음악적으로 표현한 최초의 음악가.

그의 음악은 웅대하고 강렬하며 무언가 스며나오는 듯하다고 한다. 

 

불행하고 가난하고 병고에 시달리고 고독한 사람.

마치 고뇌로써 빚어진 것 같은, 세상에서 기쁨을 거절당한 그 사람이 스스로 '환희'를 창조한다.

괴로움을 돌파하여 기쁨으로(Durch Leiden Freude)!

고난의 체험에서 숭고한 영역에까지 정진한 인간적인 영웅. 

1801년(31세)-스타인하우저의 데생을 바탕으로 니들(Neidl)이 판화로 제작 

1802년(32세)-C.Horneman의 세밀화 소품 

1804년(34세)-C.J.Maehler의 유화 

1812(42세)-라이프 마스크, F.Klein 작. 후대 화가나 조각가들의 기본 자료가 됨.

1818(48세)-August von Kloeber 연필 드로잉 

819(49세)-J.Stiler 유화. 악보 표지는 Missa Solemnis(장엄미사곡, 1819년부터 작곡) 

1820년(50세)-Josep Daniel Boehm 연필 드로잉

 

굳게 다문 입

"어떤 때는 부드러우며 정답고, 어떤 때는 흘기며 얼르는 듯 무시무시하고 아름다운 표정의 눈"(W.C. 뮐러 박사)

"베토벤의 부드러운 눈과 그 눈이 지닌 깊은 슬픔을 보고 울고 싶어지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렐스타브 1825년)

'마음닦기 >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현토완역 논어집주  (0) 2020.02.16
관동군 제731부대 죄증 도록  (0) 2020.01.16
다시, 독립의 기억을 걷다  (0) 2019.12.31
최재형  (1) 2019.12.22
라쇼몽(羅生門)  (0) 2019.12.16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