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하얼빈02

취미활동/해외여행

by 빛살 2020. 1. 28. 15:40

본문

* 일시 : 2020년 1월 13일, 월요일

* 일정 : 숙소(아침 식사) - 완다몰(万达茂wànmào), 노주가(老廚家lǎochú jiā)에서 점심 - 동북호림원(东北虎林园dōngbĕihŭlínyuán) - 자오린공원(兆麟公园zhàolíngōngyuán ) - 빙등제(冰灯节bīngdēngjié) - 万达茂, 시아부시아부(呷哺呷哺 XiābǔXiābǔ )에서 저녁 

완다몰. 다소 거추장스러운 절차를 거쳐 실내로 들어갔다. 3층에 있는 노주가. 꿔바로우(鍋包肉) 원조 맛집인 중앙대가 노주가의 분점이라고 한다. 꿔바로우보다 가지볶음과 겉모습이 해파리냉채 비슷한 炒肉拉皮(Chǎoròulāpí)를 더 많이 먹었다. 고량주 같은 독주가 생각났으나 맥주 한 잔으로 대신했다.

식사 후 화장실을 이용했는데 음식점 밖에 있었다. 출입문이 굳게 닫혀 있고 한두 번 이상 꺾인 통로를 이용하기 때문에 냄새가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구조이다. 하지만 하얼빈 어디에서나 느낄 수 있는 담배연기 냄새는 짙었다.

몰을 나오다가 장갑 한 짝 잃어버려 가족들의 성화에 다시는 술을 입에 댈 수 없었다.

동북호림원(Siberia Tiger Park). 처음에는 동북 호림원으로 끊어 읽었는데 동북호 임원으로 끊어읽어야 한다. 동북호가 하나의 단어였다. 시베리아호랑이, 아무르호랑이라고도 하며 백두산호랑이도 이에 속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산신으로까지 숭배되는 존재고, 88올림픽 마스코트로 많은 귀여움을 받기도 했다. 

세계 최대라는 말대로 호랑이가 엄청 많았다. 동물의 왕이라 불리는 존재가 철망 안에서 길들여지며, 구경거리가 된 다는 것이 조금은 서글펐지만 호랑이 구경은 실컷했다.

사자, 백호, 퓨마, 표범도 있었다.

구경을 끝내고 중국인에게 부탁하여 찰칵!

자오린공원 남문

19091023일 안중근과 우덕순은 하얼빈 역을 돌아본 후 이곳에 와서 의거 방안을 상의하고 러시아어 통역을 맡았던 유동하와 함께 공원 남문 밖에 있는 사진관에서 마지막 기념사진을 찍었다.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경 이토히로부미를 처단하고 1910년 3월 26일 다롄시 뤼순감옥에서 순국한다. 마지막 유언에도 이곳이 나온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르도록 일러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조린공원은 1900년에 지어진 하얼빈 최초의 공원으로 원래 이름은 도리공원(道里公园)이었는데 항일영웅 이조린(李兆麟) 장군을 기념하여 1946년 3월 9일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공원 내에 장군의 무덤이 있다. 

안중근 의사는 이곳에도 조국에도 묻히지 못했다.

남문 가까이에 있는 안중근 의사 휘호비. 청초당은 순국 이틀 전에 쓴 마지막 휘호라고 한다. 청초는 푸른 풀이다. 겨울을 이겨낸 풋풋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당은 연못이다. 파릇한 풀이 돋아나는 연못가는 생명력이 가득 찬 해방된 우리 조국이 아닐까.

그 뒤에는 '연지'가 새겨져 있다. 

五老峯爲筆(오로봉위필)        오로봉을 붓으로 삼고,

三湘作硯池(삼상작연지)        삼상을 연지(硯池)로 삼아

靑天一丈紙(청천일장지)        푸른 하늘만한 큰 종이에

寫我腹中詩(사아복중시)        내 마음속의 시를 쓰리라.

이백의 망여산오로봉(望廬山五老峯)’의 후반부라고 한다. 19102~3월 뤼순감옥에서 쓴 글이다.

 

하얼빈공원하면 또 한 사람이 떠오른다.

사람의 솜씨로 꾸며진 꽃밭 하나 없이

크나큰 느릅나무만 하늘로 어두이 들어서서

리 우에 까마귀떼 종일을 바람에 우짖는

슬라브의 혼() 같은 울암(鬱暗)한 수음(樹陰)에는

나태한 사람들이 검은 상념을 망토같이 입고

혹은 벤취에 눕고 혹은 나무에 기대어 섰도다

하늘도 광야같이 외로운 이 북쪽 거리를

짐승같이 고독하여 호올로 걸어도

내 오히려 인생을 윤리(倫理)치 못하고

마음은 망향(望鄕)의 욕된 생각에 지치었노니

아아 의식(衣食)하여 그대들은 어떻게 스스로 족하느뇨

창량(蹌踉)히 공원의 철문을 나서면

인거(人車)의 흘러가는 거리의 먼 음천(陰天) 넘어

할 수 없어 나누은 광야는 황막(荒漠)히 나의 감정을 부르는데

남루한 사람 있어 내게 인색한 소전(小錢)을 욕구하는도다

- 유치환, ‘하얼빈 도리공원’ (1942

유치환은 40년 봄부터 북만주 빈강성(賓江省) 연수현(延壽縣) 신구(新區)"자유이민촌 가신흥농회" 농장과 정미소를 경영하며 일제어용단체인 하얼빈협화회에 근무하였고, <만선일보>대동아전쟁과 문필가의 각오” 라는 친일 논설 기고했다.(1942.2.6.) "()”(국민문학 423), 전야”- 학병 지원 촉구(춘추, 4312), 북두성” - 대동아공영권 수립 축원(조광, 444월)등 친일시 발표했으나 1945년 6월 귀국하여 1967년 2월 13일 교통사고로 죽을 때까지 시인과 교육자로서 명예를 누렸다. 현재 친일인명사전에 수록을 보류한 상태다.

하얼빈에서 이효석, 안중근, 유치환의 삶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겨울 하얼빈 여행은 빙등제에 초점이 맞춰질 것 같다. 캐나다 퀘벡 윈터 카니발, 일본 삿포로 눈 축제와 더불어 세계 3대 겨울축제라고 한다. 한 마디로 어마어마했다. 인생에 한번쯤은 구경할 만했다.

입구에 얼음으로 커다란 온도계를 설치해 놓았는데 -19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발이 시려울까 걱정했는데 핫팩 신발 깔창을 파는 곳이 있었다. 앞으로 추운 곳을 여행할 때는 핫팩이 필수다. 호주머니에는 일반형 두 개, 신발 깔창으로 두 개, 그래도 추우면 옷에 붙이는 파스형 두 개. 그러면 걱정 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이 조형물이 가장 좋았다. 수시로 바뀌는 조명이 다른 행성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저녁식사는 완다몰

시아부시아부(呷哺呷哺)에서 훠궈를 먹었다. 상호 디자인이 중국답지 않게 깜직하다고 하니 막내가 대만계열의 음식점이라고 한다. 로봇이 음식을 날랐다. 음식맛도 순했다.
추위 때문인지 쉽게 지친다.

'취미활동 > 해외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얼빈03-04  (0) 2020.01.29
하얼빈01  (0) 2020.01.25
블라디보스토크03  (0) 2020.01.23
블라디보스토크02-우스리스크  (0) 2020.01.21
블라디보스토크01  (0) 2020.01.1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