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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01

취미활동/등산

by 빛살 2020. 3. 20.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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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16년 10월 22일 토요일 08:30 출발

*참가자 : 김재중, 김세용, 강윤호, 박만호

*일정 : 11:00 산행 시작 - 주왕산 주봉 - 후리메기 삼거리 - 주왕굴 - 대전사  16:00경 산행 종료

          포항 I'm 찜닭에서 저녁 식사



<주왕 전설>

주왕(周王)은 이름이 주도(周鍍)로 진()나라에서 복야상서 벼슬을 지낸 주의라는 사람의 9대 손이다. 천품이 범상치 않아 5세 때 이미 글을 깨쳤고 11세 때에는 육도삼략(六韜三略)을 통달하였으며 천문지리(天文地理)에도 능했다. 어려서부터 왕후장상을 꿈꾸면서 황하의 물을 들이마시고 태산을 갈아 없애겠다고 말하는 등 기개가 담달랐다. 성인이 되자 장사 1백 명을 거느리고 웅이산에 들어가 1만여 명의 무리를 모으고 남양에 웅거하였으니, 이때가 당나라 덕종 15(799, 신라 소성왕1)이었다.


주도는 스스로 후주천왕이라 칭하고 장안(長安)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곽자의(郭慈儀)가 이끄는 당나라 군대에게 패하고 말았다. 주왕은 요동으로 쫓겼다가 다시 신라로 도망왔는데, 따르는 군사는 1천여 명에 불과했다. 관동(關東:강원도) 지역을 거쳐 진성(眞城:지금의 청송군 진보면)에 다다른 주왕은 석병산(石屛山:주왕산의 다른 이름)이 매우 깊고 험준하다는 말을 듣고 숨어들었으나, 식량이 없어 인근 주민의 식량을 약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석병산에 많은 산적이 살고 있다는 소문이 나라 안에 퍼졌다.


당나라에서 주왕이 신라로 도망갔다는 것을 알고 신라에 주왕을 잡아 줄 것을 부탁했다. 신라왕은 석병산 일대의 산적들이 주왕과 그의 군사들임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마일성(馬一聲) 장군 5형제에게 토벌케 하였다.

 

마일성 장군이 상장군(上將軍)이 되고 이성(二聲)은 선봉장(先鋒將), 삼성(三聲), 사성(四聲), 오성(五聲)은 후장군(後將軍)이 되어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진을 쳤다. 그러나 주왕의 군사들이 기암봉(旗巖峰)에 이엉을 씌워 노적가리처럼 위장하여 군량미가 많은 것처럼 보이게 하니, 마장군 형제들은 주왕의 군사가 많은 것으로 여기고 감히 공격하지 못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사실을 알게 된 마장군은 장군봉에 올라 위장해 놓은 노적가리를 향해 활을 쏘았는데, 기암의 중간쯤에 바위가 뚝 떨어져 나간 듯한 것이 바로 마장군의 화살 흔적이라고 한다. 그 후 마장군의 군사들이 포위하고 공격하니 주왕의 군사들이 당하지 못하고 무너졌으며, 주왕은 모든 것을 체념하고서 주왕굴 속으로 들어가 숨었다고 한다. 주왕굴은 높은 낭떠러지에서 흐르는 폭포수가 굴 입구를 막고 있으므로 숨어 지내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그러나 주왕의 천명이 다했음인지 어느 날 폭포수에 세수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가 군사들에게 발각되어 마장군의 화살을 맞고 죽었다고 한다.


주왕에게 대전도군(大典道君)이라는 아들과 백련공주라는 딸이 있었는데 현재 주왕산 내에 대전사와 백련암의 이름은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주왕산에는 군사들의 무기창고였던 무장굴, 산성을 쌓아 군사훈련을 했다는 자하성, 대장기를 꽂았다는 기암, 백련공주가 성불했다는 연화굴 등 곳곳에 주왕과 관련된 수많은 전설이 깃들어 있다.

주왕산은 기암과 단풍도 아름답지만 4월말에서 5월초에 피는 수달래의 풍경이 으뜸이라고 한다. 수달래(산철쭉)는 수단화(壽斷花)라고도 하는데 주왕이 죽은면서 흩뿌린 피가 꽃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 향토사학자 김규봉은 920년 경 낭공대사가 썼다는 <주왕사적>의 연구를 통해 신라말기 왕위쟁탈전에서 내물왕계에 패배한 무열왕계의 김주원, 김헌창, 김범문 일가의 이야기가 주왕전설로 남겨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 출처 : 인터넷 이곳 저곳에서

주차장에 가기도 전에 주차요원의 지시에 따라 길가에 주차.

주차비(성수기 5천, 비수기 4천)를 아낀 것은 좋으나

거리가 제법 되어서 김밥 가지러 간 지회장을 한참이나 기다림.

관광버스만 해도 족히 50대는 될 듯.

입장료(어른 2천8백)가 아깝지 않은 산.

몇 번 왔던 산이지만 제3폭포까지만 갔다오거나

옛날 전기 없는 마을로 유명했던 내원마을(지금은 없어짐)까지만 갔다오고

그것이 전부인지 알았는데 꽤 넓고, 코스도 다양한 산이었다.

함부로 예단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봐야겠다.

왼쪽 암봉이 주왕산 입구에 있는 대전사 뒷편으로 보이는 기암.

주왕이 대장깃발을 꽂았던 곳이라 해서 기암이라고 한다.

뛰어난 경관뿐만 아니라 전설이 산행을 더 풍요롭게 한다.

올려다만 보다가 이렇게 바라보니 느낌이 새롭다.

인원도 적고 날씨도 좋지 않아 봉좌산이나 운주산으로 가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여기에 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저 밑으로 사람들이 복작거리는 주방천계곡길이 보인다.

길가에 세워놓은 차들이 보인다.

저기 어디쯤 포항에서 한 시간 반쯤 몰고 온 차가 있다.

포항-기계-기북-상옥-부남-청송까지 오는 중에

차주인 지회장의 고향마을도 있었고 외가집도 있었다.

배칠수와 최영미의 백반토론(tbs 교통방송)을 들으면서

서울과 포항의 문화 차이를 절감했다.


계단과 오르막이 많아 조금은 힘들지만

고비마다 쉼터와 전망대가 있어 숨을 고를 수 있다.

앞만 보고 죽자사자 오르지 않고

넉넉한 마음으로 여유롭게 올랐다.

1960년대 중반 대체연료로 쓰기 위해 3년 동안 송진을 채취하고

후에 원목으로 벌채했다고 한다.

1976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송진채취가 중단되었다고 하니

이 나무는 죽다가 살아난 것이다.

곳곳에 이런 나무들이 있다.

드디어 오늘 산행의 최정상

주왕산이라고도 하는 주봉.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서 있는 줄이 줄어들지를 않는다.

중간에 정상석만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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