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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닦기/독서

by 빛살 2021. 1. 6.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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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백남룡/살림터/1992.08.25.

약간 긴 중편소설이다.

표기상으로는 두음법칙과 사잇소리현상을 인정하지 않아 읽는 데 어색한 부분이 곳곳에 있다.

 

이광수의 <무정>이나 <흙> 같은 어설픈 계몽주의나 조금 더 나아가면 심훈의 <상록수> 정도를 떠올리며 책장을 넘겼다. 도식적이고 주장이 앞서는 선전, 선동의 뻔한 내용이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그런데 읽으면서 구체적인 생활을 바탕으로 미묘한 감정들을 파헤치면서도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신뢰를 잃지 않고 있어 푸근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등장인물들도 대부분 소박하고 단순해서 푸근함을 더했다.

 

북한은 엄청난 통제사회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이혼, 재혼을 할 수 있고, 선술집도 있고, 주말도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남한과 비슷한 면도 많다고 느꼈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점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체제에서 몸에 익은 세계관일 것이다.

북한은 조국과 사회와 같은 집단을 우선으로 치고, 남한은 개인을 우선으로 한다.

경제규모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나지만 북한은 집단에 의해 훈육되고, 남한은 오로지 개인의 힘으로 성장한다. 그러니까 지향하는 바가 집단과 개인으로 나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북한이 세계 최고의 빈곤국가 중 하나이지만 버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벗>은 표면적으로 가정의 이혼문제를 다루고 있다.

선반 노동자에서 예술단 중음가수로 활동하고 있는 채순희는 자신의 재능을 맘껏 펼치고 싶어 한다. 창안과 일밖에 모르는 남편 이석춘과 생활리듬이 맞지 않는다면 그를 한편으로 무시한다.

강안기계공장 선반공인 리석춘은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며 묵묵히 로동에 전념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내의 대학진학 요청도 무시하며 아내가 허영심에 들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구도라면 대부분 순희를 부정적으로, 리석춘을 긍정적으로 보고 이야기를 펼쳐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시 인민재판소 판사 정진우는 다른 방법으로 사건을 처리해 간다.

이혼 문제는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정치적인 문제로 보고 있다.

사회의 기초가 되는 가정은 사상이나 정서적으로 질 높은 정신생활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순희는 사상적으로 미숙하고, 석춘은 정서적으로 미숙하니 서로가 벗처럼 서로가 이해하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순희가 노래로 발전해 가듯이 석춘도 대학에 진학해 학문적 소양을 넓히고 가정에도 충실하여 생활의 리듬을 찾을 것을 권하고 헌신적으로 도와준다.

자신도 남새연구에 몰두하여 자신을 소홀히 한 아내 한은옥에게서 느꼈던 섭섭함을 떨쳐버린다.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서로를 벗으로 대하고 사상적, 정서적으로 성숙해 나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에서 부정적으로 나오는 두 명의 채림과 정진우 판사를 비교하며 관료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참고, 악의 일상성↔주체적 삶)

두 명의 채림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고, 정진우 판사는 순희와 석춘 등 다른 사람들이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벗의 역할을 한다.

 

뒤에 소개된 단편소설 <생명>은 북한도 한민족답게 교육열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생명의 은인인 복부외과 과장의 아들을 갈등 속에서 불합격 처리하고, 도인민위워회 부위원장 딸도 불합격 처리하는 리석훈 학장의 모습을 통해 공정성의 문제도 생각했다.

 

거의 비슷한 분량의 <광장>이 무겁다면 <벗>은 가볍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여운은 가볍지 않다.

 

해설에 나오는 <청춘송가-남대현>, <김정호:조선의 아들, 대동여지도-강학태>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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