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봉쇄된 도시의 기록이라는 부제와 武漢封鎖日記(우한봉쇄일기)라는 한자가 달려있다.
글쓴이는 65세의 나이로 당뇨병을 앓고 있고, 디스크로 활동에 제약을 받는 보통사람이다.
하지만 우한에서 일생을 보냈고, 우한대학교, 후베이성 작가협의회장 등의 이력과 작가로서의 명성도 높아 인맥이 두텁다. 덕분에 격리된 상황 속에서도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웨이보 등 SNS에 글을 올린다.
격리 상황에서 인터넷의 역할이 매우 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2020년 12/30 우한중심병원 안과 의사 리원량이 의대 동급생의 위챗 그룹에 코로나에 관한 글을 게시하여 감염병에 대한 소문이 퍼진다(리원량은 1/3 우한 공안국 경고와 훈계 조치, 1/8감염, 2/6 사망, 34세).
많은 사람들이 12/31에 소식을 접한다.
전문가들은 인부전인(人不傳人) 가공가방(加控可防)-사람 간 전염이 안 되고, 조절할 수 있고 막을 수 있다-이라 하여 방치한다.
1/20 중난산 원사 폭로 사람 간 전염이 확인된다.
1/23 봉쇄
1/25 일기 시작
3/24 일기 끝(60일)
4/8 우한 개방(76일 봉쇄)
처음 20일간 방치하여 걷잡을 수없는 사태를 일으킨 관료와 전문가를 엄중하게 비판한다.
정치가 제일 먼저 인민을 죽였다.
양회 준비로(인민대표대회와 인민정치협상회의. 3월에 개최) 모든 문제를 덮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관료 및 언론 등 기득권을 배후로 한 극좌파들이 문제를 어렵게 한다. 집단의 침묵보다 더 무서운 것은 진실을 덮는 세력들이다. 우한 사람들은 코로나와 더불어 그들과도 싸워야했던 것이다. 어느 나라나 극이 붙는 사람들은 비주체적이고 이념의 노예이다.
당신이 경멸하는 사람에게 세상을 양보하지말라!(209쪽)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 모두를 돕는 것이다.(45쪽)
-최시형이나 <페스트>에서 보듯 사회적 거리두기, 손 씻기, 마스크 쓰기 등 기본 위생규칙을 성실하고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 가장 기본적이다.
나는 무조건 정부와 한편이 되어 그들의 지시를 모두 따를 것이며, 정부를 도와 조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로할 것이다. 다만 정부와 내가 생각하는 방식이 다를 때, 글쓰는 과정에서 가끔 내 의견이 튀어나올 수도 있다. 그뿐이다.(94쪽)
-사회주의적 인간상과 자유주의적 인간상이 대비된다. 우리나라 같으면 봉쇄는 어림도 없다.
더 감동적이었던 건 여전히 빈틈없이 거리를 쓸고 있는 환경미화원의 모습이었다. 평소처럼 모든 길마다 환경미화원이 있었다. 지금 우한은 찬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중인데 말이다.(288쪽)
노동자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들의 침착한 태도와 고생 덕분에 나는 크게 안심할 수 있다.(289쪽)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 바로 약자들에 대한 당신의 태도다.(209쪽)
-자원봉사 등 인민의 고통과 희생
상식이란 가장 심오한 이치와 가장 빈번한 실천 속에서 나온다. 상식은 심오한 것 중에 심오한 것이다.(277쪽)
진보한 사회는 최소한 우리 각자가 거짓말하지 않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기준을 더 낮춘다면, 최소한 우리 각자가 거짓말에 동조하지 않는 데서부터 시작한다.(280쪽)
정부는 인민의 정부이고, 인민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한다. 정부의 공무원들은 인민의 심부름꾼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295쪽)
그들은 정치적인 개념을 바탕으로 상식을 생각하고, 우리는 생활 속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식을 생각한다.(310쪽)
오히려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은, 대부분의 문제는 사회의 어두운 면에 관심을 기울일 때 일어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밝은 빛에 과하게 취해 있을 때 나타난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런 빛은 우리의 시력을 망가뜨리죠.((399쪽)
동포들이 귀국과 후베이성 사람들이 외지로 나가 일하는 문제에 대해 정부에서는 적극 지원하고 있으나, 오히려 민간에서 말을 듣지 않으니 이 역시 기이한 일이다.(408쪽)
-코로나와 같은 감염병은 전 지구적 문제인데 지역적인 문제로 접근해 해결이 어려워 진다.
글쓴이는 개혁과 개방을 주장한다.
미국과 정치적으로 대립하고 있지만 의료분야에서는 서로 협조하는 장면을 이야기해 욕도 먹는다.
일본에도 우호적이다.
일본의 지원물품에 있는 글귀(청산은 하나로 이어져 구름과 비를 함께 하니, 밝은 달 비추는 곳이 어찌 다른 땅이리오 靑山一道同雲雨 明月何曾是兩鄕 /送柴侍御,王昌齡2월 11일)에 감동하고 베이징에 있는 중일우호병원도 나오고, 일본을 세계적으로 깨끗한 나라(3/21일기)라고 밝히고 있다.
2020년 1월에 하얼빈 완다몰 서점에서 한국 관련 서적은 안 보이고 일본 관련 서적은 눈에 띄던 것, 아동도서 코너에서 구입한 '당시 300수,에 '送日本國僧敬龍歸(송일본국승경룡귀)/韋莊(위장)'가 있지만 한국관련 시는 없어서 서운했던 것이 떠오른다.
2020년 무더운 날 김천에 있는 천년고찰에서 '우한폐렴'이라는 글귀를 보고 참담했던 적이 있다.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 오직 분별하는 마음만 없으면 된다(至道無難 唯嫌揀擇-신심명).'
구태여 분별하여 차별하려는 마음은 어디서 온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