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작별하지 않는다

마음닦기/독서

by 빛살 2022. 3. 31. 12:55

본문

작별하지 않느다/한강/문학동네/2021.12.01.

짧은 문장, 잛막한 장면의 연속적 제시로 웹툰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빠르고 선명하다. 표현과 상상력 모두 몰입하게 만든다.

 

1부 새

검은 나무들의 꿈 이야기로 시작한다.

눈(단절과 연결) 내리는 공동묘지에 검은 통나무들이 비석처럼 서 있다. 바닷물(밀물)이 봉분 밑의 뼈들을 쓸어가고 있다.

무덤은 광주로 시작해 제주, 경산(코발트광산), 베트남(한국군 성폭력 생존자 인터뷰)까지 확장된다.

무덤의 뼈들이 유실된다는 것은 잊혀진다는 것이다. 

 

나(경하)는 인선에게 꿈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들자고 제안한다.

사전 작업 중 인선은 손가락이 절단되어 병원에 입원한다.

"그렇게 안 되도록 삼 분에 한 번씩 이걸 하는거야. 이십사 시간 동안 간병인이 곁에서. /삼 분에 한 번?/상대의 말을 따라 할 줄밖에 모르게 된 사람처럼 나는 되물었다(41쪽)." 

신경을 살리기 위해 3주 정도 봉합된 자리를 바늘로 찔러야 한다.

죽은 생명에 대한 기억은 고통이다. 그 고통을 통해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기억투쟁, 기억의 연대라는 말이 떠올랐다.

최근 세월호 광고 문제(2022.03.10. 정치성 중립성 방해로 서울교통공사 세월호 광고 불승인. 28일 인권이 재검토 권고)를 보면 망각을 강요하는 세력은 여전하다.

 

나는 인선의 부탁으로 앵무새 아마를 보살피기 위해 제주 인선의 집으로 간다.

"어떻게 이렇게 가벼운 거야, 내가 물었을 때 인선은 자신도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새들의 뼈에는 구멍들이 뚫려 있다고, 장기 중에 제일 큰 건 풍선처럼 생긴 기낭(氣囊)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새들이 조금 먹는 건 위가 정말 작아서 그런 거야. 피도 체액도 아주 조금뿐이어서. 약간만 피를 흘리거나 목이 말라도 생명이 위태해진대. 가스 불꽃에서 나오는 약간의 유해물질도 혈액 전체를 오염시킬 수 있다고 해서 전기레인지로 바꿨어.(109-110쪽)"

아마의 몸무게는 20g 정도로 심장 박동이 감지될 무렵의 태아의 몸무게가 그 정도라고 한다.

새는 연약한 생명을 상징한다.

불교의 <할육무합(割肉貿鴿)>,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최재천)>를 연상하며 그런 생명을 죽이는 존재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생각해 보고 업(業)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폭설 속에서 어렵게 집에 도착하지만 새는 죽어 있었다.

 

2부 밤

폭설로 외부세계와 단절된 집에서 인선의 환영과 대화를 통해 둘이 함께 하기로 한 프로젝트의 제목이 <작별하지 않는다>이고,  4·3과 관련된 가족의 수난사를 듣게 된다.

 

3부 불꽃

"그 겨울 삼만 명의 사람들이 이 섬에서 살해되고, 이듬해 여름 육지에서 이십만 명이 살해된 건 우연의 연속이 아니야. 이 섬에 사는 삼십만 명을 다 죽여서라도 공산화를 막으라는 미군정의 명령이 있었고, 그걸 실현할 의지와 원한이 장전된 이북 출신 극우 청년단원들이 이 주간의 훈련을 마친 뒤 경찰복과 군복을 입고 섬으로 들어왔고, 해안이 봉쇄되었고, 언론이 통제되었고, 갓난아기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광기가 허락되었고 오히려 포상되었고, 그렇게 죽은 열 살 미만의 아이들이 천오백 명이었고, 그 전례에 피가 마르기 전에 전쟁이 터졌고, 이 섬에서 했던 그대로 모든 도시와 마을에서 추려낸 이십만 명이 트럭으로 운반되었고, 수용되고 총살돼 암매장되었고, 누구도 유해를 수습하는 게 허락되지 않았어. 전쟁은 끝난 게 아니라 휴전된 것뿐이었으니까. 휴전선 너머에 여전히 적이 있었으니까.  낙인 찍힌 유족들도, 입을 떼는 순간 적의 편으로 낙인찍힐 다른 모든 사람들도 침묵했으니까. 골짜기와 광산과 활주로 아래에서 구슬 무더기와 구멍 뚫린 조그만 두개골들이 발굴될 때까지 그렇게 수십 년이 흘렀고, 아직도 뼈와 뼈들이 뒤섞인 채 묻혀 있어.

그 아이들.

절멸을 위해 죽인 아이들.(317-318쪽)"

- 4·3 희생자 10명 가운데 1명은 아이였다('제주 4·3을 묻는 너에게' 허영선,190쪽). 아이와 새의 이미지가 겹친다. 이 아이들에 대한 환상적인 경험으로 인선은 내가 제안한 작업을 시작하기로 한다.

"숨을 들이마시고 나는 성냥을 그었다. 불붙지 않았다. 한번 더 내리치자 성냥개비가 꺾였다. 부러진 데를 더듬어 쥐고 다시 긋자 불꽃이 솟았다. 심장처럼. 고동치는 꽃봉오리처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가 날개를 퍼덕인 것처럼(325쪽 작품의 끝).

<작별하지 않는다>는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에 대한 기억 투쟁이자 진혼곡이다.

 

더 읽을거리: 화산도, 지상에 숟가락 하나.

어떻게 할 것인가: 길(현기영)

'마음닦기 >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몬드  (0) 2022.05.22
헤이트  (0) 2022.05.22
모든 용서는 아름다운가  (0) 2022.03.07
루시  (0) 2022.01.16
식물학자의 노트  (0) 2022.01.10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