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극한적 상황에서도 그 상황을 수용하고, 감정에 휩싸이지 않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 생각을 정리할 기회를 주어 좋았다.
독일군은 수감자들을 인간이 아닌 기계, 물건, 노예나 짐승보다 못한 존재로 여긴다.
"마지막에 장교가 물었다. "Wieviel Stück?"(몇 개) 그러자 하사는 단정하게 경례를 붙인 뒤 650 '개'이며 모두 준비가 되었다고 대답했다.(17쪽)
노예나 식민지 백성도 인간이 아니었다. 그들의 노동력으로 번영을 누렸으면서도 사과 한 번 없었고,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인종차별로 나갔다.(현대 독일의 경우는 예외)
"교황청, ‘유대인 학살 실태’ 편지 받아”…홀로코스트 묵인 논란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1109102.html
* 제노사이드의 10단계: 분류-상징화-차별-비인간화-조직-양극화-준비-박해-절멸-부정(헤이트 131쪽). 이러한 배제의 시스템은 구성원 간의 연결 고리를 끊어버림으로써 관계를 단절시키고 전체 시스템을 붕괴시킨다.
* 홀로코스트가 가능했던 이유: 뿌리 깊은 유대인 차별(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유대인 디아스포라는 하느님의 형벌), 인종주의적 전통- 아프리카 노예의 경우
수용소는 우리를 동물로 격하시키는 거대한 장치이기 때문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동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곳에서도 살아남는 것은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똑똑히 목격하기 위해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는 최소한 문명의 골격, 골조, 틀만이라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가 노예일지라도, 아무런 권리도 없을지라도, 갖은 수모를 겪고 죽을 것이 확실할지라도, 우리에게 한 가지 능력만은 남아 있다. 마지막 남은 것이기 때문에 온 힘을 다해 지켜내야 한다. 그 능력이란 바로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당연히 비누가 없어도 얼굴을 씻고 윗도리로 몸을 말려야 한다. 우리가 신발을 검게 칠해야 하는 것은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한 존중과 청결함 때문이다. 우리는 나막신을 질질 끌지 말고 몸을 똑바로 세우고 걸어야 한다. 그것은 프로이센의 규울을 따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쓰러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다.(57-8쪽)
- 빅터 프랭클(트레블링카 수용소), '죽음의 수용소에서' 면도,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사람들.
누구든지 가진 사람은 더 받을 것이며 못 가진 사람은 그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가복음 4:25
선발에서, 혹은 극도의 피로로 인한 죽음에서 그들을 구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들의 삶은 짧지만 그들의 번호는 영원하다. 그들이 바로 '무젤매너(무슬림)', 익사자, 수용소의 척추다. 그들은 끊임없이 교체되면서도 늘 똑같은, 침묵 속에 행진하고 힘들게 노동하는 익명의 군중•비인간들이다. 신성한 불꽃은 이미 내부에서 꺼져버렸고 안이 텅 비어서 진실로 고통스러워할 수도 없다. 그들이 살아 있다고 부르기가 망설여진다. 죽음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지쳐 있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 앞에서, 그들의 죽음을 죽음이라고 부르기조차 망설여진다.(136쪽)
우리 주위에도 엘리아스를 닮은 사람들, 그 씨앗을 지닌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목적도 없이, 모든 형태의 자기절제와 양심을 결여한 채 살아가는 개인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의 이런 결함들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엘리아스처럼 그런 결함들 덕분에 살아간다.(149쪽)
- 정상성의 병리성: 솁셸, 알프레드 L, 엘리아스 린친, 앙리- 에고티스트
멘디, 피콜로 장(오디세우스의 노래, 신곡 26곡)- 긍정적인 인물
나는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 있게 된 것이 로렌초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물질적인 도움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 끝없이 상기시켜준 어떤 가능성 때문이다. 선행을 행하는 너무도 자연스럽고 평범한 그의 태도를 보면서 나는 수용소 밖에 아직도 올바른 세상이, 부패하지 않고 야만적이지 않은, 증오와 두려움과는 무관한 세상이 존재할지 모른다고 믿을 수 있었다. 정확히 규정하기 어려운 어떤 것, 善의 희미한 가능성, 하지만 이것은 충분히 생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로렌초는 인간이었다. 그의 인간성은 순수하고 오염되지 않았다. 그는 이 無化의 세상 밖에 있었다. 로렌초 덕에 나는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수 있었다.”(187쪽)
치글러가 반합을 내밀고 보통 양의 배급을 받은 뒤 가만히 기다리고 서있다. “왜 그러는 거야?” 블록엘테스터가 묻는다. 치글러에게 두 배의 죽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는 치글러를 밀쳐 쫓아버리지만 치글러는 다시 돌아와 불쌍하게 계속 고집을 부린다. 그의 카드는 왼쪽으로 넘겨졌고 모두 그것을 보았다. 블록앨테스터가 카드를 확인하러 간다. 치글러는 두 배의 배급을 받을 권리가 있다. 배급이 정확히 주어지자 치글러는 죽을 먹으러 조용히 침대로 간다.(198)
- 가장 슬펐던 부분
"Kamaraden, ich bin der Letzte!(동지들, 내가 마지막이오)"
비굴한 무리인 우리들 속에서 어떤 목소리, 어떤 신음 소리가 들렸다고, 동의의 신호들이 나타났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 우리들 중 힘이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 힘이 있던 마지막 사람은 지금 우리들의 머리 위에 매달려 있다. 나머지 사람들은 교수용 밧줄 몇 개만 있으면 충분할 것이다. 러시아인들이 올 수 있다. 그들은 여기서 다만 노예들, 우리를 기다리는 무기력한 죽음에 어울리는 기운이 다 빠진 우리만을 발결하게 될 것이다.(227-8쪽)
모든 반란은 어떤 식으로든 특권을 가진, 그러니까 신체 상태나 정신 상태가 다른 일반 포로들보다 훨씬 나은 포로들에 의해 계획되고 지휘되었다. 이건 놀랄 일이 아니다. 고통을 덜받는 사람이 반란을 일으킨다는 건 처음에는 역설적으로 보일 수 있다. 수용소 밖에서도 룸펜프롤레타리아가 투쟁을 선도하는 일은 드물다. '거지들'은 저항하지 않는다. (279)
수용소에서 지내는 동안 희망을 갖는 버릇, 자신의 이성을 신뢰하는 버릇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수용소에서는 모든 일이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벌어지기 때문에, 생각이라는 것은 쓸모가 없었다. 그것은 위험하기도 하다. 고통의 원천이자, 그 고통이 일정한 한계를 넘으면 자연의 섭리에 의해 무뎌져버리는 감수성이라는 것을 되살려내기 때문이다.(262쪽)
우리 존재의 일부분은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의 눈에 하나의 사물일 뿐인 시절을 보낸 사람의 경험이 비인간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263쪽)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다양하게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모른 척하고 싶었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모르는 사람은 질문하지 않으며, 질문한 사람에게 대답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276쪽)
그러나 나치즘의 증오 속에는 이유가 없다. 그 증오는 인간의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밖에 있다. 파시즘이라는 유해한 나무에 열린 유독한 열매이지만, 파시즘 밖에 그것을 뛰어넘는 곳에 있다. 우리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해야 하며 경계해야만 한다. 그것을 이해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인식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과거에 벌어졌던 일이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며 의식이 또다시 유혹을 당해 명료한 상태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식까지도.(302쪽) --- 실체가 없는 파시즘
괴물들은 존재하지만 그 수는 너무 적어서 우리에게 별 위협이 되지 못한다. 일반적인 사람들, 아무런 의문 없이 믿고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기술자들이 훨씬 더 위험하다. --- 그러므로 이성과 다른 도구로, 혹은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력을 앞세워 우리를 설득하려고 애쓰는 사람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303쪽)
- 괴물도 문제지만 괴물을 만들어 낸 사회도 책임이 있다.
사실 우리의 미래는 외적 요인들, 우리들의 자유로운 선택과는 전혀 무관한 요인들과 우리가 의식하고 있지 못하는 내적 요인들에 강하게 종속되어 있다. 잘 알려진 이런 이유들 때문에 우리는 본인의 미래도 이웃의 미래도 알 수가 없다. 또 같은 이유로 과거의 일에 대해 "만약에"라고 아무도 말할 수 없는 것이다.(305쪽)
아마도 그보다는 지칠 줄 몰랐던 인간에 대한 관심이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지니고 있던) 살아남아야 한다는 의지뿐만 아니라 꼭 살아남아 우리가 목격하고 참아낸 일들을 정확하게 이야기해야 한다는 의지가 생존에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암흑과 같은 시간에도 내 동료들과 나 자신에게서 사물이 아닌 인간의 모습을 보겠다는 의지, 그럼으로써 수용소에 널리 퍼져 많은 수인들을 정신적 조난자로 만들었던 굴욕과 부도덕에서 나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고집스럽게 지켜낸 것이 도움이 되었다.(307쪽)
* 아우슈비츠는 끝나지 않았다.(일본어판 제목): 지배 질서(체계)가 유지되는 한 홀로코스트와 같은 비극은 되풀이 된다. (4•3 항쟁). 서경식의 발문.(서승, 서준식, 서경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