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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1,2

마음닦기/독서

by 빛살 2024. 6. 2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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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1,2/ 앤서니 도어, 최세희/ 민음사/ 2023.11.1.

표지가 어설퍼서 선뜻 손이 가지 않을 것 같은 책이다.
책을 펼치자 제목이 붙은 짤막짤막한 장들이 이어져 얼마 전에 읽었던 비슷한 형식의 소설이 떠올라 구성의 치밀도가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읽어나갈수록 책에 빠져들었다. 1,2권 모두 합하면 800쪽에 육박하지만 길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이런 구성 때문인 것 같다. 표현이 섬세해서 작가가 여성인 줄 착각했었다.

살상과 파괴라는 전쟁을 배경으로 해서 끔찍하고 슬픈 장면이 빠질 수 없었지만(대표적 희생자-프레데리크) 가족애, 우정, 엘레나 아주머니와 마네크 부인의 헌신 등  따뜻함이 묻어나기도 한다. 생말로에서 마네크 부인을 중심으로 한 저항운동(할머니 레시스탕스 클럽)은 그곳에서 가까운 건지섬을 배경으로 한 영화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의 내용이 떠오르게 했다.
페낭 남매가 살던 졸페라인도 지금은 도시재생으로 유명한 곳이 되었다고 한다.
미국인이면서도 프랑스와 독일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10년의 노력 끝에 써낸 작가의 의지에 박수를 보낸다.

주인공은 6세에 실명한 마리로르 르블랑이다. '전원교향곡(앙드레 지드)'과 '서편제'의 주인공들과 같은 처지다. 우선 빛을 볼 수 없는 사람들은 빛으로 가득 찬 세상을 어떻게 인식할까 궁금한 마음을 갖고 마리로르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녀와 맞닥뜨린 아이들은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진다. 눈이 아파? 잘 땐 눈을 감고 자? 몇 시인지는 어떻게 알아? / 그녀는 설명해 준다. 아프지 않아. 그리고 그들이 상상하는 것 같은 어둠은 없다. 모든 건 소리와 감촉이 얽혀 있는 망, 격자 모양의  틀, 그리고 솟아오르는 물결로 이루어져 있다."(75)
"어린이 여러분, 실제로는 말이죠, 수학 상으론 어떤 빛도 눈에 보이지 않는답니다."(88)
사람이 볼 수 있는 빛의 파장 범위는 380~780nm이다. 380nm 이하의 짧은 파장을 자외선, 780nm 이상의 긴 파장을 적외선으로 분류한다.
인간의 가청주파수는 보통 20Hz~20kHz로 간주한다.(초저주파, 초음파)
양자중첩: 미시세계에서 양자물질은 확률로 존재하다가 관찰에 의해서 비로소 확정된다.(양자얽힘--->삼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

정상적인 시력을 갖춘 인간들은 빛이 만들어내는 세계에서 매몰될 수 있다. ---> 삶은 개구리 증후군(비유)
"그게 옳아?" 유타가 말한다. "딴 사람들이 다 한다는 이유만으로 뭔가 하는 게?"(203)
각자의 역할에 갇힌 모든 사람---> 악의 평범성(생각하라. think we must.)

시각, 청각 장애인들이 오히려 정상인을 뛰어넘는 감지능력을 지니고 있고 더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다. 항상 대상을 탐구하는 자세로 대하기 때문에 한순간 한순간이 새로움으로 차 있을 수 있다. 서편제에서 유봉이 송화의 눈을 멀게 함으로써 한을 심어주듯이 장애는 다른 쪽으로 보상을 받는다. 이 얼마나 다양한 세계인가?
미국의 맹인 화가: 존 브램블리트, 베토벤의 음악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1934년에서 2014년까지지만 마리로르가 6세였던 1934년부터 16세 때인 1944년 8월 12일까지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시각장애인, 어린 소녀의 관점으로 보는 세상은 새롭고 구체적이다. 그런 것이 공감요소로 작용한다.

주인공은 자연사박물관의 열쇠를 관리하는 아버지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서 성장한다. 생말로에서는 작은할아버지와 마네크 부인의 보살핌에 의존한다.
또 다른 주인공인 베르너 페닝은 기술과 과학분야에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 있다. 동생 유타와 졸폐라인에 있는 고아원 '아이들의 집'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세상과 소통한다. 라디오를 고치는 능력으로 지들러의 추천을 받아 국립정치교육원 시험에 합격하고 슐포르타학교에 재학 중 프레데리크와 친하게 지낸다. 소련에서 프랑스까지 폴크하이머와 분대를 이루어 자신이 만든 기계로 파르티잔의 전파를 탐지하여 제거한다.  파리에서 작전 수행 중 자신의 잘못으로 7살도 안 된 어린 소녀가 총에 맞아 죽은 것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는다. 1944년 8월에 생말로에서 마리로르를 만나 채 하루가 되지 않는 시간을 함께 보낸다. 그동안 작은할아버지의 방송을 파악하고도 위험으로부터 지켜주었고, 룸펠의 위험도 제거하고, 도시탈출을 도와준 후 헤어진다.그리고 지뢰를 밟아 죽는다.
1974년 베르너의 더플백이 폴크하이머에게 전달되고, 이는 다시 유타에게로, 유타는 마리로르 르브랑에게 전달한다. 유타는 새 두마리 그림이 든 베르너의 편지를 프레데르크에게 보낸다.

*소설 이해의 핵심이 되는 두 가지: 1.불꽃의 바다
보르네오에서 한 왕자가 마른 강바닥에서 파란 돌맹이 하나를 잡아 뽑았다. 궁으로 돌아가는 길에 도적들에게 심장을 찔리고 모든 것을 빼앗겼지만 움켜쥔 돌맹이 때문에 살아난다.
술탄은 석수를 시켜서 돌맹이를 가공하여 '열대 바다 같은 파란색에, 한가운데에 불그스름한 점이 하나 깃들어 있는, 불꽃을 품은 물 한 방울 같은' 다이아몬드(불꽃의 바다)를 만들어 왕자의 왕관에 박아넣었다. 왕자는 불사의 몸이 되었지만 그의 주위에는 온갖 악재가 발생한다. 엄청난 수의 적군이 처들어오자 사제는 자신의 꿈을 말한다.
'불꽃의 바다'는 대지의 여신이 자기가 사랑하는 바다의 신에게 강을 통해 선물로 주려고 했는데 강이 말라 왕자가 뽑게 된 거고, 이에 화가 난 여신이 저주를 내렸다. 돌을 품는 자는 영원히 살겠지만 품고 있는 한 그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차례로 악운이 미칠 것이다. 하지만 다이아몬드를 바다에 던진다면, 저주를 거둬들일 것이다.
그러나 왕자는 돌을 품을 결심을 하고 사제의 혓바닥을 잘라 버렸다. 침략자들이 궁을 파괴하고 무자비한 살육을 자행했지만 왕자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200년이 흐르고 보석은 프랑스 한 공작에게 넘어갔고 그 공작은 불행이 계속되자 왕의 박물관에 이백 년 동안 문을 열어선 안 된다는 조건으로 맡긴다.

마리로르가 말한다. 다이아몬드는 태초의 세계에서 반짝이던 빛 한 조각 같단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떨어지기 전에 말이에요. 그 빛 한 조각이 신의 손에서 비가 되어 지상으로 떨어진 거래요.(87)
베르너가 바다에 돌려준다.

2. 르블랑 형제의 방송: 페닝 남매가 들었던 마리로르 할아버지 형제의 라디오 방송
뇌는 완전한 암흑 속에 갇혀 있습니다. 당연한 사실이랍니다. 어린이 여러분. 그 목소리는 말한다. 뇌는 두개골 속 깨끗한 액체 속에 떠 있지. 빛 속에 있는 게 절대 아니거든요. 그런데도 뇌가 정신 속에 지어 올리는 세계는 빛으로 가득합니다. 뇌는 색과 움직임으로 넘실거립니다. 그런데 어린이 여러분, 뇌는 단 한 점의 빛도 없이 살아가면서 무슨 수로 우리에게 빛으로 가득한 세계를 지어 주는 것일까요?(80-81)

어린이 여러분, 집 난로 속에서 석탄 한 조각이 빨갛게 타고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어떤가요? 석탄 한 덩어리는 한때는 초록빛 풀 한 포기였고, 100만 년 전에 살았던 양치류나 갈대예요. 아니, 어쩌면 200만 년 전, 아니면 1억 년 전에 살았던 건지도 몰라요. 1억 년이라니, 상상이 가나요? 풀잎들은 평생토록 여름이 되면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빛을 받아들인 다음, 그 태양 에너지를 자기 안으로 흡수해요. 나무껍질, 잔가지, 줄기로 바꾸죠. 풀들은 빛을 먹고 살아요. 우리가 밥을 먹는 것과 비슷하죠. 하지만 풀이 죽어 땅에 떨어지고, 어쩌면 물속으로 떨어져 썩어서 토탄이 되면, 그 토탄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흙 속에 켜켜이 쌓인답니다. 한 달, 십 년, 심지어는 사람의 한평생이 그냥 바람 한 번 훅 분 것처럼, 손가락 두 개를 딱 부딪치는 순간에 지나지 않는 영겁의 시간 동안 말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토탄은 말라서 돌처럼 되고, 그걸 누군가 땅에서 캐낸 다음, 광부가 여러분 집까지 배달해 준답니다. 그걸 어린이 여러분이 직접 난로까지 가져갈 수도 있겠죠. 그렇게 태양빛........ 1억 년이 된 태양빛이 오늘 밤 여러분의 집을 따뜻하게 해 준답니다......(81)
눈을 떠요. 그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영원히 감기기 전에 그 눈으로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걸 찾아봐요.(82)
--- 지들러 씨는 미소를 짓는 것이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얘야, 너나 나나 역사는 더 오래 걸리는 길을 택한다는 걸 알잖아. 안 그래?(130)
그러나 다들 정면으로 문제에 맞섰고 각자 맡은 바를 끝까지 다 하겠다고 결의했다......(2:331)
"그들의 세상이 돌아가게 만드는 건 우리야." 마네크 부인이 말한다. "자네, 기부 부인, 자네 아들이 그놈들 신발을 수선하잖아. 에브라르 부인, 자네와 자네 딸이 그들의 편지를 분류한다고. 그리고 뤼엘 부인, 자기 빵집에서 그들이 먹는 빵을 얼마나 많이 만드냔 말이야."(2: 55-56)  
자네 옆에 있는 그 사람의 팔다리에 자네와 똑같은 피가 흐르지  않는다면 자넨 그 무엇도 믿어선 안 돼. 설령 그런 믿을 만한 사람이 있다고 치더라도 자네가 싸우길 바라는 대상은 사람이 아니야. 마네크, 체제지. 무슨 수로 체제와 맞서 싸우겠다는 건가?(2:89)

전쟁의 본질: 그들이 무엇 때문에 공격해 오는 거지? 그저 미쳐서 공격하는 걸 거야. 후퇴하는 것만이 살길이지.(115)
살상 무기(핵)와 강인한 육체를 생산적인 일에 쓸 수 있다면?

과학의 한계(베르너): "그냥 숫자야." 그는 하우프트만이 듣지 못할 만큼 목소리를 낮추어 말한다./ "순수 수학 말이다, 제군."  베르너가 하우프트만의 뚝뚝 끊는 듯한 억양을 흉내 내 덧 붙인다. 그러고는 다섯 손가락이 다른 다섯 손가락과 나란히 오게 장갑 낀 두 손을 마주한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2: 52-3)
다만 숫자에 불과해. 순수 수학. 자네 스스로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야만 해. 그건 그들 쪽도 마찬가지다.(2: 253)

그는 묻는다. "네모 선장이 그 소용돌이에서 살아났을까요?  
마리로르는 그녀에겐 너무 큰 코트를 입은 채, 마치 기차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5층 층계참에 않아 있다. "아뇨." 그녀는 말한다. "네. 사실 잘 모르겠어요. 내 생각엔 그런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아닐까요? 그러니까, 어떻게 됐을까 궁금하게 만드는 거요." 그녀는  고개를 갸웃한다. "그는 미치광이였잖아요. 그래도 난 그가 죽지 않길 바랐어요."(2:3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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