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신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가부장적 사회에서 벌어지는 남성들의 잔혹한 폭력과 자신을 지킬 아무런 수단도 없는 여성들의 비참한 삶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약혼자가 있는데도 가장의 명령에 의해 50세 남자의 두 번째 아내가 될 수밖에 없는 17세의 람라(이슬람에서는 4명의 아내까지 둘 수 있다), 난봉꾼 사촌과 강제로 결혼하는 람라의 이복동생인 힌두, 람라 남편의 첫 번째 아내인 사피라의, 세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서 무슬림 여성들이 겪는 비극적 상황을 드러내고 있다.
소설은 "참아라! 딸들아! 인내하라!"로 시작한다.
"이제부터 너희는 각자의 남편의 것이다."
"결혼할 때 아버지가 딸에게, 또 은연중에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여성에게 건네는 관례적인 조언은 이미 다들 달달 외우고 있는 것이었다. 그 조언이란 그저 딱 한 마디로 요약된다. 바로 순종하라는 것!"(69)
남자는 신과 같은 존재이고 여자는 남자에게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 신에 기댄 남성의 권위만 존재하고, 남성들이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모든 것들에 순종하고, 인내해야만 하는 여성들. 그들의 관계와 같은 일들을 지금 우리 주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는 오랫동안 독백을 이어갔다. 내 생각은 묻지 않았다. 내가 자기랑 결혼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건 그 남자에겐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38)
가부장적 사회는 거미줄처럼 치밀하게 여성을 옭죄고 있다.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그들의 그물에 여성을 가둔다.
"네가 내린 결정이 비단 네 인생에만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이번만큼은 알아야 해."(52)
"사실대로 애기하지 않으면 목을 칠 거야. 그리고 장담하건대 그래봐야 나는 감옥에 가지 않을 거야. 이 나라에서는 부자들이 무조건 옳으니까. 얼른 털어놔, 얼른!"(216)
남성들이 내세우는 주장들은 자신의 이익에 맞게 신을 왜곡한 것이다. 기독교나 불교 등 모든 종교의 교리가 왜곡되어 세상을 어지럽히 듯이. 어쩌면 남성들도 그들이 친 그물에 갇혀지내는 희생자일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우리더러 몸을 꼭 가리고 다니고, 꼬박꼬박 기도를 하고, 전통을 반드시 지키라고 하시는데, 그렇다면 대체 왜 결혼할 때 반드시 여자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못박아둔 마호메트의 가르침만은 일부러 모른 체하는 거죠?"(64)
"아, 아버지! 저는 잘 알고 있어요. 우리가 사는 마을은 변화를 반대하고 전통에 순응해야 하는 곳이죠. 그렇지만 과연 그게 아버지가 결정을 내린 유일한 이유일까요? 딱 한 순간만큼은, 아버직 스스로도 속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셨나요?" (65)
"그의 마음속에는 수많은 상처와 헤아릴 수 없는 좌절감이 자리잡고 있어, 그걸 감추려고 관습을 무지막지하게 경멸한다는 게 느껴졌다."(94)- 남편 무바락에 대한 힌두의 생각
"아버지에게 최악의 죄는 그 딸이 간음을 당하는 것이라 알려져 있다. 진정한 신자라면 알라의 화를 피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게 최악의 고통을 안겨주는 걸 면하려면, 딸은 최대한 일찍 결혼해야 한다."(70) - 무슬림 여성의 조혼
람라, 힌두, 사피라가 극도로 억압적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있기나 한 걸까?
나는 더 이상 앓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눈물이 날 때면 밤을 틈타 내 방 깊숙이 숨어서 운다. 이젠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런 기대도 없다. 도움도, 희망도 바라지 않는다. 체념한 채, 모두가 기대하는 대로 맞춘다. 속을 털어놓을 만한 사람도 없다. 소유지 안의 여자들 사이에는 암묵적인 규칙, 위선, 불신이 맹위를 떨친다.(118-9)
힌두는 미쳐간다.
사피라는 "여자에게는 다른 여자만큼 최악의 적은 없는 법이다.(145)"라는 생각을 갖고 람라의 존재를 지우려고 한다. 불합리한 상황에서는 주술과 같은 비합리적인 방법이 동원된다. '사자의 콧수염' 일화처럼 인내심을 갖고 계략을 쓴다. 마치 조선시대 처첩간의 갈등을 보는 것 같다. 하지만 문제의 원인을 남편에게서 찾지 않고 람라에게 돌리고 있다.
내 부부생활에서, 짧디짧은 인생에서 그저 한 편의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분명 똑같은 시나리오가 끝없이 반복될 것이다.(229)
사피라는 끝까지 인내심과 계략을 다른 여성에게 돌릴 것이고 가부장적 사회는 지속될 것이다.
람라는 사피라의 계략에 의해 남편에게 칼부림까지 당하지만, 사피라를 이해해 준다. 그리고 집을 나와 자유의 몸이 된다.
사람들이 많은 소리들을 했군요. 진실만 쏙 빼놓고 말이죠! 사실과는 한참 먼 애기들이에요.......(221)
삶에 정답은 없다. 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상황이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주체의 의지와 상황에 의해 어떻게 변할지 단정할 수 없다. 람라가 강제 결혼을 당했을 때 절망적인 상황에 조급증을 내지 말고 인내와 계략으로 상황을 헤쳐나가기를 바랐다. 하지만 남편과 첫 번째 아내의 힘에 밀려 무엇을 해 볼 도리가 없었다.
'득수반지 현애살수'
새로운 세상을 찾아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결국 닫힌 세계의 문을 열고 새로운 세계와 소통해야 한다.람라의 약혼자였던 아미누, 오빠 아마두처럼
<연관 작품>
치고지에 오비오마(나이지리아)- 어부들
사막으로 사라진 아이들/엘리자베스 레어드
봄타령/하근찬/창비 1996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