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범도

마음닦기/독서

by 빛살 2024. 9. 11. 17:47

본문

범도1,2/ 방현석/ 문학동네/ 2023.10.04.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이야기. 잊혀져 가는 사람들의 존재 확인하기.- 저자 강연 중에서 

강연장에서 책을 구입하고 저자의 친필 서명까지 받았지만 두 권 합해서 1,300쪽에 가까운 분량 때문에 미루고 미루다가 1년이 넘어서 본격적으로 책을 잡았다. 그런데 생각과 달리 책장이 잘 넘어갔다. 때로는 시큰거리는 콧날을 문지르고, 웃음도 머금으며 모처럼 책을 읽는 재미에 폭 빠졌다. 홍범도는 내가 찾던 바로 그 인물이었다.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을 빛나게 할 줄 아는 사람,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며 그 일의 높은 경지까지 이른 사람. 희망은 지금 자신이 해야할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이다.
청산리에서 끝나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키르키스스탄까지 함께 달리고 싶었는데. 

왜 범도와 같은 천대받던 포수가 독립운동의 선봉에 섰을까?
마라톤에 한창 빠져 있었을 때이다. 뛰었던 곳을 지나가노라면 그곳이 새롭게 보인다. 내가 흘렸을 땀방울이 어딘가 배어 있을 것 같았다. 달리는 동안 나도 모르게 지나치는 공간들과 끊을 수 없는 새로운 인연을 맺어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흘린 땀만큼 이전과는 다른 감정으로 보게 되었다. 
땀방울로 맺어놓은 이런 감정들이 땅에 대한 애착을 갖게 하고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로 이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땀방울을 땅에 흘려본 자가 그 땅의 주인인 것이다. 이 땅에 뿌리를 내린고 사는 사람들을 왜 民草라고 했는지 이제 이해가 된다. 천한 출신인 최재형이 독립운동가에 헌신한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양반들은 뿌리가 허공이라는 관념에 있기 때문에 땅의 주인이 바뀌어도 상관이 없다. 
"나는 상대의 눈을 보지 않고 손과 발을 먼저 살피면서 살아왔다. 행하지 않는 것을 믿지 않았다."(범도1, 190) 

<포수의 원칙> 지피지기 追擊必捕 과감무쌍 일격필살 산야일체- 5대철칙 

<외세에 기댄 개혁은 가능한가?- 갑신정변>
"아니 세도......번잡인가 무시기, 그 좋은 일을 하는데 일본군과 현흑상단의 건달들을 왜 끌어들여요. 우리 파총 같은 훌륭한 사람들 하고 해야지."(1권100)
죽이지 않고도 농민들을 진압할 수 있다는 것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파총이었다. 조금만 선무공작을 펼쳐도 낫을 내려놓을 농군들이었다. 덤빈다 해도 죽이지 않고 능히 제압할 수 있는 상대였다.(1권 109)
왜 휘둘러야 하는지 모를 칼을 언제까지 휘둘러야 하나. 생각하는 것조차 싫어졌다. (1권 111)
눈물 나는 장면(1권 108-112) 
정태신 파총은 오직 왕만을 추종하며 민초는 '이와 서캐보다 더럽고 천하고 가난한 놈'(차이경)으로 보고 있다.
갑신정변- 자체 동력이 없는 개혁, 조급증, 世道飜換-후천개벽, 민초의 희생
이 땅에 확실하게 뿌리를 내리고, 땅에 대한 집착이 남다른 민초들이 이 땅의 주인이다. 
- 가장 무서운 자, 잃을 게 없는 사람. 얻고자 하는 게 없는 사람. 혈혈단신 홍범도. 

 

"길일이 여럿이지만 한 해 중에 경칩만한 길일이 없다. 움을 틔운 새싹과 동면에서 깨어난 어린 짐승을 경이롭게 살피고, 고아들을 잘 기르겠다는 발심을 하는 날이 경칩이다. 이 세상 생명 가진 만물 중에 홀로 오지 않은 것이 없고 홀로 가지 않는 것이 없거늘 오직 홀로 가며  홀로 가는 것을 아는 자, 홀로 가는 자를 홀로 가게 하라.할!(1권 254)
如犀角独步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먼저 내가 강해져야 한다. 그리고 내 주변부터 살뜰히 살펴야 한다. 그러면서도 먼 곳을 바라보는 것을 잊지 않기를. 
受康 온화하게 받아들여라. 

"다 사기야. 농민군에 겁을 먹은 고종과 민비가 시간을 벌려고 벌인 사기였다고. 우린 떼놈과 왜놈들이 끼어들 구실을 주지 않으려고 화해 협약을 맺고 다 해산했는데,  그 미친것들이 우릴 때려잡겠다고 기어코 떼놈을 불러들였어. 떼놈들이 들어오니까 왜구들도 옳다구나, 만세를 부르며 제깍 기어들어오고"  
"뭐, 우리나라의 일에 왜 청국놈과 왜국놈을 끌어들여?" 
"그러니까 그것들이 미친 거지. 백성들 생각은 눈곱만큼도 않고  왕 노릇할 생각만 하다가 조선을 왜놈과 청국놈의 전쟁터로 만든 거지"(1권 265)  

나는 처음에 그(김수협)의 뜨거운 가슴과 시원시원한 행동에 내가 매료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그의 뜨거움이 어떤 일에 대한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람과 세상을 대하는 그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함의 여러 형태 중에 하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어떤 필요나 목적을 저울질하지 않고 언제나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드문 인간이었다.(1권 355) 

유인석은 화서학파, 노론의 우두머리가 아니라 오백 년간 조선을 이끌어 온 유림의 적통을 이어받은 양반 사회의 수장이었다. 왜구와 오랑캐의 침입을 수없이 당하고 임금이 피신까지 갔어도, 언제나 잠시였다. 결국, 다시 나라를 지배하는 건 글 읽고 글을 짓는 유림의 선배들이었다. 그것이 오백 년 조선 역사가 가르쳐준 교훈이었다. 지난 1년, 개화당을 능지처참해 팔도에 사지를 내걸어 시전했듯이 이 환란의 시절이 지나가면 춘추대의를 저버리고 상투를 자르게 했던 자들의 죄를 묻고 다시 유림이 나라를 지배하게 되리라는 것을 잘 아는양반들이었다.(1권 357)  

"나는 놈이 맞겠으나 우리 진포는 아이가 아닌 여자고, 저것이 아닌 포수요. 글을 읽은 분이 말을 가려서 하시지요. 나는 다른 건 참아도 아이와 여자, 내 동지에게 함부로 하는 자는 참지 못하는 습관이 있소."(1권 388)  

"임금, 황제? 벼슬하는 놈들이 나라를 위해서 죽어? 그놈들한테는, 지들이 임금놀이하고 벼슬해먹는 데 필요한 나라만 있으면 되는 거야. 이 나라가 청국놈 것이 되든, 로씨아놈 것이 되든, 왜놈 것이 되든, 그게 그놈들에게 무슨 상관이겠어. 왜놈들한테만 대가리 숙이면 여전히 종과 머슴을 부리고, 상놈들 위에 군림하면서 떵떵거리며  잘살 수 있는데, 그놈들이 왜 죽겠어?"(1권 553 남창일) 

전쟁의 승패를 가르는 것: 4정3작2전1선- 정보, 작전, 전력, 선전능력
싸움은 언제나 기세였다. 

하세가와는 자기가 양성한 저격수들의 전공을 가로채 신화가 되었지만 나는 나의 대원들을 전설로 만들고 싶었다.(2권 19)-작전참모 이진, 청년저격대장 현창하, 연락도감 조석보 -> 뒷것 

나는 그를 믿은 것이 아니라 그의 문장을 믿었다. 나는 양반을 지지한 것이 아니라 그가 하려는 한양 진공을 지지했다. 그런데, 부모 형제를 남겨두고 목숨을 내걸고 여기까지 달려온 일만의 군병들은 대체 그에게 무엇이란 말인가? 왜적과 싸우다 이름도 무덤도 남기지 못하고 죽은 그들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하나뿐인 아들 임승조와  한날 한 언덕에서 낙명한 임헌근은 제사는커녕 울어줄 핏줄 하나 남기지 못했다. 
나는 물어볼 수 없었다. 총대장 이인영은 누구의 승인도 받지 않고 이미 문경으로 떠난 다음이었다. 나는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그에게는 내가 지키려는 나라와는 다른 나라가 있는 게 분명했다.(2권 52) 

"이미 천하가 일본의 것이 되었소. 이 나라의 주군인 임금이 포기한 나라를 누가 무슨 수로 지킨단 말이오. 양반이 팔아넘긴 양반의 나라를 포수들이 되찾겠다는 것이 과연 가당한 일이오? 언제 한 번 조선이 일본을 이긴 적이 있었소? 아니 조선과 일본이 싸운 적이나 있었소? 언제나 일본과 명•청의 싸움이지 않았소. 일본이 명나라에 져서 명나라를 받들고, 명•청에 조공을 바치고 살아온 것이 조선이었소. 청나라가 일본에 졌으니 조선이 일본을 받들고 사는 것 또한  당연하지 않소? 솔직하게 말해봅시다. 청나라를 받들고 사는 것이나 일본을 받들고 사는 것이나 조선 백성들에게 다른 것이 무엇이오. 더 솔직하게 말해봅시다. 일본이 지배하는 나라에는 양반이 없소. 일본 하나만 받들면 되오. 나나 홍장군이나 일본만 인정하면 얼마든지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단 말이오. 홍장군과 같은 실력이면 능히 병조판서를 하고도 남을 세상이 온 것 아니오. 하지만 일본을 물리치고 다시 청나라가 지배하는 나라가 되면 어떻게 되오? 손가락 하나 하나 가딱하지 않고 권력과 부귀를 다 누리는 양반들이야 좋겠지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다시 무능하고 탐욕스러운 양반들 밑에서 짐승 취급이나 당하면서 사는 길 이외에 다른 무슨 길이 있소?  이순신, 이순신하지만임진전쟁에서 조선은 졌어야 하는 거요. 그 전쟁에서 일본이 지는 바람에 조선은 청을 떠받들며 지금까지 살아왔고, 우리 같은 상민은 양반들에게 개 취급을 받으며 살아온 거 아니오?"(2권 91-92) 

"사람의 행동이란 마치 날아가는 탄환과 같은 것일세. 탄환이 가던 방향을 바꾸어 날아가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사람의 행동도 그런 것이네. 지금까지 그가 해온 행동이 그가 앞으로 할 행동이네."(2권 122, 임창근 총대장) 

전쟁은 나라와 나라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전쟁을 벌여야 할 상대인 일본이란 나라는 있었지만 정작 그 일본과 전쟁을 할 주체인 우리나라가 없다는 사실을 나는 생각지도 못했다. 대한제국으로 이름을 바꾼 조선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의 주체로 나서기는커녕 일본을 상대로 싸우는 우리를 '비적'으로로 규정했다. 
"난 우리가 여든 번 넘는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서도 왜 몰리기만 했는지를 '파란말년전사'를 읽고 나서야 어렴풋이 알 것 같았소."  
"기런데도 왜 조선을 떠나라는 말을 아이 들었습네까. 전투에 이긴 숫자로 전쟁의 승패가 나지 않는단 말입니다. 일본은 당신과 전쟁을 하는데, 당신은 일본군과 전투만 해왔단 걸 이제 아시겠습네까?"  
"전투가 아닌 전쟁을 하라고, 그래서 조선을 떠나라고 한 것이오?"  
"분명한 건 당신에게 지켜야 할 조선의 강토는 있는지 모르지만  당신이 되찾아야 할 조선이란 나라는 이미 없습네다. 나라를 지키려면, 백성들이 지키고 싶어하는 그런 나라부터 만들어야 하는데 이 조선에서는 불가능하단 말입니다."(2권 156-157)
-조선이 망했다. 누구의 책임인가? 척양척왜를 외친 민중들 탓인가, 외세에 빌붙어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지배세력인가? 

"아미리가도 백이십오 년 전에는 지킬 나라가 없었던 영국의 식민지였습니다. 아미리가도 지켜야 할 나라를 스스로 만들어서 지키는 것이란 말입니다."(2권 158)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안전과 행복을 보장하는 정부를 조직할 권리를 가진다.(미 독립선언서)
- 인디언, 흑인, 여자는 제외. 백인 남자만. 

왜 놈이 나쁜 것은 왜놈이어서가 아니고 사람이 해서는 안 될 흉악한 짓을 했기 때문이다. 당신이 한 짓이 왜놈보다 덜한가.(2권 172) 

세상에 가장 나쁜 차별이 뭔지 아오? 고통과 슬픔을 차별하는 거요."(2권 176) 

중대의 깃발은 한결같이 서책을 펼쳐놓은 것만큼 작았다. 나는 항일연합포연대의 깃발도 보자기 크기 하나만하게 만들도록 했고 중대의 깃발은 그것의 절반으로 크기를 제한했다. 나는 그토록 크고 어마어마하게 많던 호좌의진의 깃발을 잊지 않았다. 그 길고 긴 깃발의 행렬을  보노라면 애도와 슬픔으로 포장한 양반집 상여 행렬의 화려한 허세가 떠올라, 나는 마음이 불편하고 싫었다. 전투는 깃발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허세가 통하는 전장도 아니었다. 오직 준비된 실력과 두려움을 이겨내는 기세만이 승리를 안겨주었다. 중대 깃발의 크기는 항일연합포연대 깃발의 절반이었지만 글씨는 하나가 더 붙었다. 격1, 격2, 격3...... 청년중대는 '격ㅊ'이었고 기동중대는 '격ㄱ'이었다.(2권 190) 

"제가 적의 수괴 한 두를 잡는다고 해서, 장군님께서 일본군 수백, 수천 두를 잡는다고 해서 물러날 일본이 아니겠지요. 그걸 몰라서 우리가 지금까지 싸운 건 아니지 않습니까? 싸우면 어떻게 되는지를  몰라서가 아니라 아무도 싸우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아니까 싸우는 것이지요."(2권 273) 

"우리가 만국공법을 어기고 포로를 죽이는 야만을 저질러서야 되겠습니까? 공자님도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데가 없다고 하였거늘 일본인이라 해도 무기를 버리고 항복한 포로를 죽여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2권 276)  
기분으로 애국하는 망동주의자들(312) 

헤이그 밀사(1907)로 네덜란드에서 일본의 침략 범죄를 국제사회에 폭로한 그를 대한제국 검찰은 법원에 기소했고, 궐석재판을 진행해 그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이 대한제국 법원이었다. 헤이그 현지에서 이미 생을 끝내버린 이준에게 종신형을 선고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한 것도 대한제국의 법원이었다. 부사로 활약한 스물셋의 출중한 청년 외교관 리위종에게 종신형을 선고한 것 역시 대한제국 법원이었다.(2권 325-6)
"나는 고종과 순종이 우리의 왕이라고 여겼으면 벌써 총을 내려놓았을 것이오. 그런 왕을 믿고 왜 싸운단 말이오. 을사년 이후로 그들을 왕으로 여긴 적이 없는 나는 그들이 무슨 문서에 어떤 도장을 왜 찍었는지 아무 관심이 없소."(2권 326-7)
"세상을 지탱하는 데는 다섯 개의 도가 필요하오. 인의예지신. 어질고 바르며, 예를 알고 지혜가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 신의를 지켜야 하는 것이오. 무릇 필부라 하더라도 이 다섯 개의 도를 지켜야 하는즉, 더구나 군왕이 제 백성에게 지켜야 할 마지막 신의마저 저버리면 군왕이라 할 수가 없소. 그러니 여천의 말이 그르다 하기 곤란하오."(2권 327) 

사람들의 문제는 어디서나 지식과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그 지식과 능력을 자기를 위해서만 쓰는 데서 비롯되었다. 그러니 지식과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많은 조직일수록 분란은 끊이지 않았다. 권업회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같은 일을 두고도 자기 파당의 이익에 따라 어제는 저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가 오늘은 이 이유를 내세워 찬성하며 상대를 비난하기 일쑤였다.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도 희생과 책임은 피하고 이익과 세력은 챙기려는 의도가 감춰지는 것이 아님에도 그랬다.(2권 358) 

'대한독립전쟁은 허위가 감행했던 한양 진공 작전을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다시 세워야 할 나라는 왕의 나라가 아니라 인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공화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허위가 지녔던 조선 유림의 위엄과 안중근이 지닌 공화주의자의 기개, 김알렉산드라가 꿈꾸었던 인민주의자의 이상을 함께 계승해야  합니다.'(2권 449)  

"세상을 바꾸려 덤벼들었으나 세상이 어디 그리 호락호락 바뀝니까. 세상보다 훨씬 바꾸기 쉬운 자기를 바꿔 적에게 빌붙는 자가 변절자고, 변절자 중에서 제 능력으로 차지할 수 없는 것을 차지하려고 동지를 파는 자가 밀정이지요. 단순한 변절자는 저를 팔아 원하는 것을 얻지만, 밀정은 남을 팔아 제 것이 아닌 것을 차지하려 들지요. 저 하나만 팔아먹는 놈은 몰라도, 저 하나로 모자라 팔지 말아야 할 동지를 팔아넘긴 배반자는, 처단해야지요."(2권 478) 

빼앗긴 나라의, 있지도 아니한 자리를 놓고 다투는 정객들, 대적 전쟁은 미뤄둔 채 작은 차이를 큰 차이인 것처럼 내세우며 싸우는 이들은 홍장군이 서 계신 저 자리를 보고, 대오각성해야 합니다.(2권 507)
  
"나라가 망한 이래로 우리가 의병이 되어 목숨을 내걸고 싸운 것은 반드시 이길 수 있을 것이라 믿어서는 아니었소. 이기고 지고를 떠나 오직 의로써 싸워왔소. 그렇게 싸우다가, 저격여단의 창설자 김수협과 항일연합포연대의 청년중대장 현창하, 부중대장 이정재,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이 전사했소. 박한과 리범진이 스스로 목숨을 내던지며 항거했고, 허위와 박상진이 장렬하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소. 그들이 싸워왔기에 오늘의 싸움이 있소. 오늘 싸워야 내일의 싸움도 있소. 이번에 싸우지 않으면 다음 싸움도 없소. 우리가 포기하지 않아야 언젠가, 대한의 누군가가 못다 한 우리의 이 싸움을 이어갈 것이오. 그렇지 않소?"(2권 549) 

"이건 일본 육사의 교범에 없는 모양이오. 몸을 낮춰야 보이는 것이 길이오. 많이 배운 사람들일수록 길을 밟고 서 있으면서도 길이  없다고 하오. 길은 허공에 있지 않고 땅바닥에 있는데, 허공만 처다 보면 길이 어떻게 보이겠소." 
내 옆에 나란히 엎드린 지청천의 표정이 바뀌었다.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은 몸이 너무 높기 때문이오. 기어서라도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날아서 가려고만 하니 발밑에 놓인 길이 보이겠소? 짐승의 높이로 낮아지면 길은 어디에나 있소."(2권 631)  

이 소설의 주인공이 대단했던 것은 가장 많이 싸우고 가장 크게 이겼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승리 앞에서 오만했던 적이 없고, 패배 속에서도 비굴했던 적이 없었다. 그가 진정으로 대단했던 것은 순정함이었다. 헌신은 무한했으나 바란 대가는 전무했다. 그는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을 오직 사람으로 대했다. 노선과 이념, 계급으로 사람을 가르고 상대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2권 668) - 작가의 말 

'마음닦기 >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3) 2024.12.18
밤은 노래한다  (5) 2024.10.07
기적의 뇌과학  (3) 2024.09.11
참지 않는 여자들  (1) 2024.09.11
음악과 음악가  (1) 2024.09.10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