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제목: foster 특히 英 (수양부모로서) 아이를 맡아 기르다[위탁 양육하다] (→adopt)
아이와 1인칭 시점이 주는 편안함과 많은 대화, 짧은 분량으로 쉽게 읽힌다.
툭 던져 놓는 장면과 작품 전부를 빨아들일 듯한 결말 부분이 주는 묘미가 여운을 남긴다.
'나'는 엄마가 임신을 해 친척인 킨셀라(존과 에드나) 부부에게 맡겨진다. 아빠는 엄마가 챙겨준 나의 짐도 내리지 않고 가버린다. 그만큼 관심도 사랑도 없다.
"물은 정말 시원하고 깨끗하다. 아빠가 떠난 맛, 아빠가 온 적도 없는 맛, 아빠가 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 맛이다."(30) 나도 아빠에 대한 사랑이 없다.
맡겨진 집에서의 첫날 밤, 침대에 오줌을 싸지만 킨세라 부부는 따뜻하게 처리해 준다.
부부의 사랑 속에서 나날을 보내다가 이웃의 장례식장에 가게 되고 밀드러드 아주머니에게서 부부에게 아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들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 개는 차마 죽이지 못하고 이름을 잃게 되었다.
엄마가 남동생을 낳고 개학도 다가와 집으로 돌아온다.
아빠는 부부의 보살핌에 불만을 이야기하지만 아이는 절대 말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맡겨진 집으로 달려가는 장면은 실제라고 생각해도, 상상이라고 해도 될 것같다. 이런 것이 작가가 주는 매력이다.
마지막 문장.
"아빠." 내가 그에게 경고한다. 그를 부른다. "아빠."
그 뜻은 나의 아빠 같은 사람은 되지 말고 당신이 진정 나의 아빠라는 뜻이 아닐까.
결말 부분에서 '나'가 우물에 빠질 때 가슴이 철렁했다. 혹시 죽는 게 아닐까 하고.
<푸른 들판을 걷다>가 불의 이미지라면 이 작품은 확실히 물의 이미지다. 많이 가라앉았다.
어린이는 사랑으로 자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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