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의 영화부터 떠 올랐다. 우애가 깊은 형제라도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으며, 흐르는 강물처럼 포용하며 살아야 한다는 엔딩씬이 인상적인 영화였다. 그 다음으로 주인공이 강물 소리를 들으며 깨달음을 얻는다는 헤세의 <싯다르타>도 떠올랐다. "모든 것은 흐른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싯다르타>에 있는 내용이다. 노자의 上善若水도 떠 올리며 매우 동양적인 사고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작품에서는 인디언 윌슨 문의 세계관과 이어지며 이것을 토리가 이어받고 있다.
제목 자체가 낯익었다. 두꺼운 책이지만 쉽게 읽혔다. 상실과 치유, 자연과의 교감을 바탕으로 사건이 전개되고 내용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뚜렷한 선악 대립구조와 유형화된 인물, 성장소설이 갖는 교훈적인 내용, 독자를 위한 독서모임 가이드 등 계몽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콜로라도 거니슨 강가 마을 아이올라가 주 배경이다.
17세의 토리(빅토리아 내시)는 인디언(인전) 윌슨 문과의 운명적인 만남으로 잊고 지내던 자신에 눈뜨기 시작한다. 하지만 혈육인 동생 세스에게는 두려움을 느끼며 멀리 하게 된다.
《나무집 위에 있다는 안전함, 캘 오빠의 다정함만으로도 나는 이 세상과 동떨어져 있는 듯한 달콤함을 느꼈다. 레모네이드가 중요 한 게 아니었다. 그날, 태어나 처음으로 세스가 올 수 없는 곳에 있으니 마음이 편했다. 무엇 때문인지,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는 몰랐으나, 어쨌든 그날 처음으로 내가 마음 깊은 곳에서 동생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 이미 나는 사탄, 뱀, 죄인 등 어둠을 주제로 한 설교를 빠짐없이 들었지만, 세스가 가진 어두움에 대해 알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아무래도 타고나는 게 분명한 어둠, 어떻게 하면 질서를 파괴하고 사람들을 괴롭힐 수 있을지 연구하며 사는 인간의 그런 어둠을 나는 알지 못했다."(73)》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의 형제도 사랑하라.(요한복음) 남매란 잘못도 반성도 혼자가 아니라 같이하는 거라고 늘 말씀하시던 어머니였다.(78)》
어머니와 이모, 사촌오빠가 교통사고로 죽자 토리는 12세에 어머니의 역할을 하게 된다. 아버지, 불량한 세스, 불평만 하는 장애인 이모부의 뒷바라지와 농사일 돕기에 매몰되어 자신을 잊고 바쁜 나날을 보낸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휠체어를 수치스러워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휠체어를 탄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더라면 혹시 오그 이모부처럼 다리를 잃고 비참한 삶을 산 수많은 참전 용사들이 조금은 덜 고통스럽지 않았을까?(80)》
토리는 마을의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다. 독감으로 온 가족을 잃고 목사에게도 홀대를 받으며 혼자서 사는 루비앨리스를 위해 기도한다.
《"궁금했다. 루비앨리스 에이커스가 정말 미친 사람인지, 그렇다면 어째서 루비앨리스가 아닌 우리에게 주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건지.
그날부터 남몰래 루비앨리스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 주님루비앨리스에이커스를도와주세요아멘.(89)"》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외면하고 도움이 없어도 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만 관심을 보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 같다.
미개한 도둑놈으로 몰려 쫓기게 된 윌은 또 다른 소외자인 루비앨리스의 도움을 받게 된다.
《"윌은 아이올라를 떠나지 않았다. 루비앨리스의 집에 숨어 있다. 루비앨리스가 윌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거다. 그랬다. 틀림없다.(121)"》
루비앨리스가 구원자가 된 것이다.
토리는 윌과 산막에서 사랑을 나누고 임신을 한다. 토리는 안전을 위해 윌에게 이곳을 떠나라고 하지만 윌은 이 곳에 있기로 한다.
《월이 이곳을 떠나 어디로 간다 한들 세스 같은 사람이 없겠는가? 어디로 간들 세스처럼 분노로 가득한 사람, 피부색이 어둡다는 이유만으로 괴롭히려는 사람이 없겠는가? 월은 도망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흐르는 강물처럼 살 거야. 우리 할아버지가 늘 그러셨거든. 방법은 그뿐이라고."(143)》
上善若水: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水善利萬物而不爭: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는 데 뛰어나지만 다투지 않고,
處衆人之所惡: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머문다.
故幾於道: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 노자 8장
*강물: 포용, 끊임없이 흘러감, 만물의 流轉
윌은 세스와 포레스트 데이비스에게 살해당하고, 토리는 배가 불러오자 윌과 사랑을 나누던 산막으로 간다. 산에서 어미 사슴과 예쁨받는 새끼와 약한 두 번째 새끼를 볼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린다. 산막을 떠나올 때 두 번째 새끼는 보이지 않았다.
*무리를 짓는 대부분의 육식, 잡식 동물들은 약한 새끼를 희생시켜 다른 개체를 살리기 위한 전략을 사용한다.(사자, 스라소니)
혼자서 출산을 하고 아기의 성을 Moon으로, 베이비 블루라는 애칭을 붙인다.
악조건 속에서 아이를 살리기 위해 마을로 내려오다 소풍 나온 가족을 보게 되고 베이비블루를 의탁한다.
《"그러나 그 검은색 자동차로 몰래 다가가 뜨뜻한 뒷좌석에 내 아들을 눕히고, 아들을 남겨둔 채 뒤돌아섰을 때는 온몸의 세포를 덮치는 격한 슬픔을 가누지 못했다.(210)"》
- 업둥이 모티프: 난주(황경한), 민간인(김종삼 시), 칠드런스 트레인(영화)
슬픔 속에서 삶의 이면을 보게 된다.
《내가 윌과 함께 누워 있던 날, 내 등이 사랑의 황홀감에 휩싸이고 있던 바로 그 순간에, 하늘을 날고 있는 바로 저 매가 둥지로 돌아갔다가 새끼들을 도둑맞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는 않았을까? 저 매가 지금 내 비극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저 매에게 비극이 닥쳤을 때 나도 나만의 행복에 빠져 있지는 않았을까?(212)
깃털처럼 가벼운 베이비 블루를 안아 든 여자는 이 아기의 엄마도 굶주렸을 거라고 확신하며 이 복숭아를 남기고 갔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이 아기를 데리고 갔는지 확인하기 위해 내가 공터로 다시 돌아올 거라고 확신했던 것이다.(217)
윌슨 문과 사랑에 빠진 것은 내 평생 가장 진실된 행동이었다. 그런 선택이 예기치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하더라도 행동의 진실성이 흐려지는 건 아니다. 그럴 땐 그저 있는 그대로 그 여파를 마주하는 수밖에 없다. 끔찍하든 아름답든 절망적이든 어떤 결과가 닥치든 간에 그저 최선을 다해 마주하면 된다고, 윌이 내게 가르쳐주었다.(224) - 흐르는 강물처럼》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 홀로 있었다.
아버지가 세스를 보안관 라일에게 고발하고, 라일은 세스와 포레스트 데이비스를 추방했다. 이모부는 어머니 곁으로 돌아갔다. 토리는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지만 사별하게 된다.
《나는 우리 집을 돌아가게 하고 유지하는 건 집안의 남자들인 줄로 알았다. 늘 그렇게 믿어웠다. 내가 가정부 혹은 일꾼 이상의 존재가 되리라고는, 우리 가족의 중심, 이 집의 심장 같은 역할을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해 본적이 없었다. 아빠마저 쇠약해진 이제, 우리 집에 남은 건 과수원과 나뿐이었다.(230)》
이후 토리는 최선을 다해 복숭아 농장을 가꾼다.
강 하류에 댐(블루 메사)을 건설하기 위해 공무원이 땅을 팔라고 하자 제일 먼저 팔고 이웃의 미움을 받는다.
- 인디언에 대한 정책과 비교
아이올라에 세스가 다시 찾아온다.
《언짢아 보이는 세스의 눈은 이 잔혹한 세상을 막무가내로 사는 그 애에게도 적어도 한 가지, 복숭아만큼은 소중하다고 말하고 있었다.(276)
세스는 나를 쳐다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칠 대로 지친 데다 괴로워하는 얼굴이 그를 스물두 살이 아니라 여든 살의 노인으로 보이게 했다. 세스의 얼굴이 너무 슬퍼 보여서 순간 나는 한때 동생을 아꼈던 어린 누나의 애틋한 마음으로 돌아갔다. 두려움과 혼란을 풀어내고 애틋함만 남기고 싶었다. 동생을 구해주고 싶었다. 동생의 악함과 세상의 악함을 내 선한 행동으로 상쇄하고 싶었다. 나도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내 모습이 내 안에 있었다고. 그러니 네 안에도 생각지 못한 면이 존재할 거라고 세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277)》
루비앨리스의 장례식도 끝나고 교수의 도움을 받아 복숭아나무와 함께 아이올라를 떠난다.
새로운 정착지에서 부동산 중개인의 아내 젤다와 친하게 지낸다.
《젤다가 말을 이었다.
"우리가 지금 여기 앉아 있는 것도 사실 원주민들(우트족)을 다 쫓아내고 우리 땅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가능한 일 아니겠어요? 아무리 모른 척, 아닌 척 한다고 해도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 "물론 그게 똑같다는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내 말은, 정부에 이익이 되면 정부는 국민들이 고통받더라도 그냥 해버리니까.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거죠."(316)》
젤다는 '앵무새 죽이기' 영화를 소개한다.
* 미국 서부 확장의 역사는 원주민에게 물리적, 문화적 제노사이드였다.(작가 인터뷰)- 아이누족
베이비불루를 버린 지 20년이 지난 후 마지막으로 찾아간 공터에서 비닐봉지에 든 글을 발견하고 그동안의 일을 알게 된다. 베이비 블루의 새로운 가족-잉가 테이트, 폴, 맥스웰, 루카스
잉가 테이트는 루카스의 출생을 숨기다가 나중에 알린다.- 아이의 권리(로기완)
《내게 닥친 일을 피하지 않고 기꺼이 마주하며 살아왔다고, 옳은 일을 하려고 애쓰며 살아왔다고 말해줄 것이다. 어떤 존재가 형성되기까지는 시간이라는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해줄 것이다. 월이 가르쳐주었듯이 흐르는 강물처럼 살려고 노력했지만, 그 말의 의미를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해줄 것이다. 물론 걸림돌을 무릅쓰며 멈추지 않고 흘러왔다는 게 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강물처럼 나 역시 나를 다른 존재들과 이어주는 작은 조각들을 모으면서 살아왔고,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416)
-정말로 바다로 가는 길을 나는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바다로 가는 노력을 그쳐본 적이 없다. -"존재와 언어"의 ‘후기’(1964), 김현
블루 메사 저수지에서 젤다, 잉가와 함께 루카스를 만나는 장면으로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