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가 중학교 다닐 때 학원 선생님이 추천했다며 읽은 책이다. 중학생이 읽을 만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책장에 20여 년을 묵혀 두었다가 최근 <흐르는 물처럼>이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이 책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일찍 읽지 않은 게 후회되었다.
어린 아이를 서술자로 내세웠지만 성인이 된 후의 회상을 적절히 섞어 흐름이 자연스러웠다. 한 편의 미국 가족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재미도 있었고,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떠가는 사건 전개도 좋았다. 성장소설의 모범이 될 만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청소년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1930년대 대공황, 앨라배마주의 메이콤이 배경이다. 앨라배마주는 1931년 백인 여성이 흑인 청년들이 자신을 강간했다고 거짓 주장하여 20년을 끈 스코츠보로 재판 사건, 1955년 12월 로자 파크스가 촉발한 먼트가머리(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 애서린 루시 사건 등으로 흑인 인권운동의 온상과 같은 곳이다.
여주인공인 나(스카웃 핀치, 진 루이즈 핀치)가 매력적이다. 모범적인 변호사인 아버지 애티커스, 오빠 젬(제레미 애티커스 핀치), 친구 딜(찰스 베이커 해리스), 흑인 가정부 캘퍼니아 아줌마 등이 주요 인물이다.
톰 로빈슨 사건에서 드러나는 완고한 인종 차별, 밥 이웰의 죽음과 법률 적용 문제가 가장 중심에 있고, 부 래들리 등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지은이의 따뜻한 시선이 펼쳐진다.
아빠가 말씀하셨다.
"우선 첫째. 스카웃, 네가 간단한 요령 한 가지만 배운다면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누군가를 정말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야 하는 거야-"(60)
모디 앳킨슨은 좋은 이웃이다.
"넌 그걸 이해하기에는 너무 나이가 어려. 하지만 때로는 어떤 사람 손에 쥐어져 있는 성경책은 누군가가 - 그렇지, 네 아빠가 손에 쥐고 있는 위스키보다도 더 나쁘단다."(88)
"세상에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있어 - 죽은 뒤의 세계를 지나치게 걱정하느라고 지금 이 세상에서 사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들 말이야. 길거리를 쳐다보려무나, 그 결과를 보게 될 테니까."(89)
아빠는 남매에게 스승과 같은 존재다.
"수백 년 동안 졌다고 해서 시작도 해보지 않고 이기려는 노력조차 포기해버릴 까닭은 없어."(147)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단다. 이번에는 우리가 북부 사람들과 싸우는 게 아니고, 우리 친구들과 싸우는 거란다. 하지만 이걸 꼭 기억하거라. 그 싸움이 아무리 치열하다고 해도 그들은 여전히 우리 친구들이고, 이곳은 여전히 우리 고향이라는 걸 말이야."(148)
이봐, 잭! 어린애가 무엇을 묻거든 제발 직접 대답해줘. 대답을 지어내지 말고. 애들은 역시 애들이지만, 답을 회피하는지는 어른들보다도 빨리 알아차리거든. 그리고 답을 회피하면 애들은 혼란에 빠지게 되지."(168)
"난 네가 뒤뜰에 나가 깡통이나 쏘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새들도 쏘게 될 거야. 맞출 수만 있다면 어치새를 모두 쏘아도 된다. 하지만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어떤 것을 하면 죄가 된다고 아빠가 말씀하시는 걸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모디 아줌마에게 물어보았다.
"너희 아빠 말씀이 옳아."/ 아줌마가 말씀하셨다.
"앵무새들은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줄 뿐이지. 사람들의 채소밭에서 무엇을 따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어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지.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되는 거야."(172-3) *앵무새 죽이기는 아무 죄도 없는 존재를 죽이는 것이다. 흑인 톰 로빈슨과 부 래들리가 앵무새에 해당한다.
"이 사건, 톰 로빈슨 사건은 말이다. 아주 중요한 한 인간의 양심과 관계 있는 문제야 - 스카웃, 내가 그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난 교회에 가서 하나님을 섬길 수가 없어."(200)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아야만 해. 다수결 원칙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야."(200)
"그래, 훌륭하신 귀부인이셨어. 할머닌 세상 일에 대해 할머니 자신의 생각이 있으셨지. 내 생각과는 아주 다른 생각이..... 얘야, 네가 그때 이성을 잃지 않았어도 난 할머니께 책을 읽어드리도록 했을 거야. 난 네가 할머니에게 뭔가 배우기를 원했다 - 손에 총을 들고 있는 사람이 용기 있다는 생각을 갖는 대신에, 참으로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를 배우길 말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새로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낼 때 바로 용기가 있는 거다. 승리란 드문 일이지만 때론 승리할 때도 있지. 겨우 98파운드의 몸무게로 할머니는 승리하신 거야. 할머니의 생각대로 할머닌 어떤 것, 어떤 사람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돌아 가셨으니까. 할머닌 내가 지금까지 본 사람 중에서 가장 용기 있는 분이셨어.(214) - 모르핀 중독에서 벗어나 맨 정신을 운명한 듀보스 할머니
"폭도란 그것이 무엇이든 언제나 인간이거든. 커닝햄 아저씨는 어젯밤 폭도 중의 한 사람이었지만 여전히 인간이셔. 남부의 작은 읍내마다 모든 폭도들은 늘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지 - 별 게 아니란 말이다. 안 그래?" (297)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찾고자 하는 것을 보게 되고, 귀를 기울이는 것을 듣게 되는 법이지요. 그들의 아이들에게도 그것을 보여주고 들려줄 권리가 있습니다.(328)
-테일러 판사(관선 변호사 임명 : 맥스웰 그린 -> 애티커스)
오빠가 혼혈아라고 부른 애들만큼이나 비참해 보였다. 백인들은 그녀(메이옐라 바이올렛 이웰)가 돼지처럼 살고 있기 때문에 상대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흑인들은 그녀가 백인이라는 이유로 상대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흑인과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하는 돌퍼스 레이먼드 아저씨처럼 살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강기슭의 땅을 소유하고 있지도 않았으며 명문 가문 출신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웰 집안 사람들에 대해 "그건 그들의 생활 방식이지" 하고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메이콤 군은 그들에게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구호품 바구니를 건네주고 극빈자 생활 기금을 주고 또한 경멸을 보냈다. 톰 로빈슨은 아마 그녀에게 상냥하게 대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을 거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그가 자신을 겁탈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마치 자신이 밟고 있는 더러운 흙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를 쳐다 보았다.(362-3)
"사람들 중에는 말이다 -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거든. 그래서 지옥에 떨어질 놈들, 너희들이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상관하지 않아, 이렇게 말할 수 있었지. 지금도 너희 들이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상관하지 않아, 이렇게 말할 수 있지 - 하지만 지옥에 떨어질 놈들, 이렇게는 말하지 않아.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 "(379 돌퍼스 레이먼드)
도대체 왜 아저씨는 가장 깊숙이 숨겨둔 비밀을 우리들에게 털어놓고 있을까? 그래서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왜냐하면 너희들은 어리고, 어린이들은 그걸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저 애가 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야 - "
아저씨는 딜을 항해 고개를 돌렸다.
"아직 저 애의 양심은 세상 물정에 물들어 있지 않았어. 하지만 조금만 나이를 먹어봐. 그러면 저 앤 구역질을 느끼며 울지 않을거야. 어쩌면 세상에서 - 옳지 않은 일을 보아도 울먹이지 않을 거야. 앞으로 몇 년만 나이를 더 먹어봐, 그렇게 되지 않을 테니."
"아저씨, 내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운다는 거예요?"
딜의 남자다움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고통 때문에 우는 거지 - 심지어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말이야. 흑인들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미처 생각하지는 않은 채 백인들이 흑인들에게 안겨주는 그 고통 때문에 우는 거란 말이다."
"아빠는 흑인을 속이는 것은 백인을 속이는 것보다 열 배는 더 나쁘다고 말씀하세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행동이라고 하셨어요."(380)
저는 우리의 법원과 사법 제도에 확신을 갖고 있는 그런 이상주의자는 아닙니다 - 저에게 그것은 이상이 아니라 살아서 꿈틀거리는 현실이지요. 배심원 여러분, 법정은 제 앞 배심원석에 앉아 계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건전해야만 건전할 수 있습니다. 법정은 오직 배심원이 건전한 만큼 건전하고, 배심원은 그 구성원이 건전한 만큼 건전합니다. 배심원 여러분이 지금까지 들으신 증거를 감정의 동요 없이 검토하여 판단을 내려 이 피고를 그의 가족에게 돌려보내시리라 확신합니다. 배심원 여러분께서 맡은 바 의무를 다해주시기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비는 바입니다.(388)
"좀더 생각해봐. 그건 우연이 아니었어. 지난밤에 난 현관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어. 너희 모두가 인도를 따라 걸어오는 것을 지켜 보려고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그렇게 기다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단다. 애티커스 핀치는 이길 수 없어, 그럴 수 없을 거야, 하지만 그는그런 사건에서 배심원들을 그렇게 오랫동안 고민하게 만들 수있 는 이 지역에서 유일한 변호사야. 그러면서 나는 또 이렇게 혼자서 생각했단다, 우리는 지금 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 거야 - 아기 걸음마 같은 것이지만 역시 걸음임에는 틀림없어."(407)
'딜이 말했다. 오빠랑 나는 가던 길을 갑자기 멈췄다.
"그래 맞아. 광대가 되는 거야. 웃는 것 말고는 사람들에 대해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어. 그래서 서커스단에 들어가 배가 터지도록 실컷 웃을 거야"
딜이 말했다.
"딜, 너는 지금 거꾸로 알고 있는 거야. 광대들은 언제나 슬퍼. 그들을 보고 웃는 건 관객이란 말이야."
오빠가 말했다.(408)
"흑인의 무지를 이용하는 저질 백인보다 구역질나게 하는 건 없단다. 절대로 바보 같은 짓을 해서는 안 된다 - 그 모든 것이 쌓이면 언젠가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테니까. 그런 일이 너희들 세대에 일어나지 않으면 좋으련만."(417)
여기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누구도 박해하는 것을 믿지 않지요. 박해는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한테서 나오는 겁니다. 펴-언-겨-언 말이에요.(461)
선생님이 스테파니 아줌마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어. 누군가가 그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때가 되었다고, 점점 분수도 모르고 주제넘게 군다고, 이러다가는 우리하고 결혼할 생각까지 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걸 들었거든. 오빠, 히틀러를 그토록 끔찍하게 미워하면서도 돌아서서는 바로 자기 나라 사람에 대해서는 비열하게 대할 수 있냔 말이야 - "(464)
학급 친구들이 열심히 덧셈을 하고 있는 동안 나는 아빠의 대답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미치광이 한 사람과 수백 만 명의 독일 국민들. 히틀러가 자신들을 감옥에 가두게 내버려두는 대신에 그들이 히틀러를 가둬야 될 듯했다. 문제는 다른 어떤 것이었 다 ㅡ 아빠에게 그것을 여쭤볼 생각이었다.(462)
<밥 이웰의 죽음>
밥 이웰은 스카웃과 젬에게 위해를 가하려다 부 래들리의 제지를 받는 과정에서 죽게 된다. 애티커스는 아들 젬이 죽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보안관 핵 테이트가 사건을 묻으려는 것에 반대하다가 결국 테이트의 의견을 받아들인다. 처음에는 의아했다. 이것이 사법 정의에 맞는가?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지 않는 것은 변호사인 그답지 않은 행동이다. 하지만 내용상 젬보다 부 래들리가 범인일 가능성이 더 크다. 그리고 그들의 행위는 긴급피난(정당방위)이다.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부 래들리는 심한 상처를 받을 것이다. 형식적인 법률주의보다 생명을 살리는 법치주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사건이었다.
아빠가 정말 옳았다. 언젠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참말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하신 적이 있다. 래들리 아저씨네 집 현관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525)
"스카웃, 우리가 궁극적으로 잘만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멋지단다."(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