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엇을 기억하는가, 어떻게 기억하는가, 왜 기억하는가, 우리가 왜 지금의 우리가 되었는지에 대한 권여선의 깊고 집요한 물음"
- 권희철(문학평론가)
이 책에 실린 7개의 단편이 모두 기억과 그 기억으로 인한 삶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설명 없이 툭툭 내던지듯 제시하는 장면들이 처음에는 낯설었다. 특히 <사슴벌레식 문답법>이 그랬다. 기억들이 반복되는 순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혼란에 빠진 인물들을 보면서 답답함까지 느껴졌으나 읽어가면서 조금씩 희망의 빛을 찾을 수 있었다.
<사슴벌레식 문답법>
인식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1박2일 강촌 여행에서 숙소에 사슴벌레가 어떻게 들어왔는지 주인 아주머니에게 묻자 "어디로든 들어와"라고 대답한다. 이 대답에 대한 해석이 반복된다.
1). 정원과 나(준희)는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하면 된다'는 식의 가능성의 표현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뒤집힌 채 버둥거리며 빙빙 도는 구슬픈 사슴벌레의 모습은 살짝 괄호에 넣어 두고- 상황의 주체를 완전히 무시하고- 결과에 대한 평가만은 중시하는 자세는 비극적 낙관주의가 된다. 과정이 재미있어 연극을 택한 정원은 결국 죽음을 선택한다.
2). 어디로 들어와, 물으면 어디로든 들어와, 대답하는 사슴벌레의 말 속에는, 들어오면 들어오는 거지, 어디로든 들어왔다, 어쩔래? 하는 식의 무서운 강요와 칼같은 차단이 숨어 있었다. 어떤 필연이든, 아무리 가슴 아픈 필연이라 할지라도 가차없이 직면하고 수용하게 만드는 잔인한 간명이 '든'이라는 한 글자 속에 쐐기처럼 박혀 있었다.
타인들의 삶을 파괴하고 합리화하는 고경애의 모습.
"자기 합리화는 자기가 도저히 합리화될 수 없는 경우에만 작동하는 기제이니까."(36)
3) 그것은 어쩌면 감당하기 힘든 두려움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어디로든 들어는 왔는데 어디로 들어왔는지 특정할 수가 없고 그래서 빠져나갈 길도 없다는 막막한 절망의 표현인지도.(37)
그렇게 밤마다 과거를 기억하면서 현재를 기억하는 듯한 겹기억이 탄생한다. 아마 부영도 잠이 안 오던 밤에 정원을 기억하려 애쓰면서 동시에 자신의 현재를 함께 떠올리곤 했을지 모른다. 불면이 만드는 좁고 어두운 길을 따라 오래된 과거를 향해 하염없이 거슬러올라가다보면 그 끝에 지금의 내가 살고 있는, 그런 무서운 기억의 원환을 하염없이 더듬더듬 헤매 돌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새벽 경애도 삼십 년전 안개 가득한 강변을 걷던 과거를 기억하려 애쓰면서 현재 자신의 모습도 함께 떠올릴까. 그런 겹기억의 순간을 경애도 견디며 살고 있을까.(40-1)
같은 질문, 같은 기억이라도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겹기억이지만 현재의 상황에서는 과거를 달리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버들 천만사>
우리 모녀 사이에 수천수만 가닥의 실이 이어져 있다면 그걸 밧줄로 꼬아 서로를 더 단단히 붙들어 매자. 함께 말라비틀어지고 질겨지고 섬뜩해지자. 뇌를 젤리화하고 마음에 전족을 하고 기형의 꿈을 꾸자.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들이 밑도 끝도 없이 샘솟았고 반희는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나기라도 한 듯 가슴이 뛰었다.(79)
스스로 끊어버린 관계를 복원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하늘 높이 아름답게>
진정한 소통이 없는 대화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 사모님.(114)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다루고 있다.
<무구>
그때 우리는 젊었으며........두렵고 또 두려웠지.(144)
무구한 땅이 부동산이라는 사람들의 광기로 더럽혀지듯, 무방비 상태의 무구 또한 사소한 것으로 더렵혀질 수 있다. 마치 두루마지 휴지의 사용량같이 사소한 일이 이혼의 이유가 되듯이.
<깜빡이>
방향지시등의 오작동을 통해 소통 문제를 다루고 있다.
<어머니는 잠 못 이루고>
원채는 다 갚기 전에는 절대 안 없어진다고, 죽어도 안 끝나고 죽고 또 죽어서도 갚아야 하는 빚이 원채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오익은 그게 바로사는 일 같다고 생각했다. 기피 의지와 기피 불가능성이 정비례하는 그런 원채 같은 무서운 말과 일들이 원채처럼 쌓여가는(172)
마찬가지로 오익은 오숙이 얼마만한 분노가 있었기에 자신을 너'라고 부르며 의절을 통보하는문자를 보냈는지 알지 못했다. 앞으로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가까운 이에게 그런 분노를 심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알았다면 그렇게 했겠는가. 무지는 가장 공격받기 쉬운 대상이지만, 무지한 자는 공격 앞에서 두려워 떨 뿐 무지하여 자기 죄를 알지 못하므로 제대로 변명조차 할 수 없다.(199)
- 이해가 불가능한 삶의 조건들 속에서도 놓을 수 없는 의문의 끈들.
<기억의 왈츠>
아직 희망을 버리기엔 이르다. 나는 서두르지도 앞지르지도 않을
것이다. 매년 새해가 되면 1월 23일의 음력 날짜를 꼬박꼬박 확인할 것이다. 운이 좋으면 죽기 전에 한번 더 진정한 왈츠의 날을 맞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날 나는 숲속 식당의 마당에 홀로 서 있지 않을 것이다. 다리가 불편한 숙녀에게 춤은 권하듯 누군가 내게 손을 내밀 테고 우리는 마주서서, 인사하고, 빙글, 돌아갈 것이다. 공중에서 거미들이 내려와 왈츠의 리듬에 맞춰 은빛 거미줄을 주렴처럼 드리울 것이다. 어둠이 내리고 잿빛 삼베 거미줄이 내 위에 수의처럼 덮여도 나는 더는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기억이 나를 타인처럼, 관객처럼 만든 게 아니라 비로소 나를 제자리에 돌려놓았다는 걸 아니까?(241-242)
나약하고 무기력한 삶에서 잃어버리 기회를 다시 기회가 온다면 놓치지 않겠다는 다짐이 보인다.
전체적으로 문제적 상황에 대한 인물의 대응을 다루고 있는 것다.
상황은 언제나 모호하고 유동적이며 기억으로 반복된다.
삶의 매 순간과 모든 순간이 조금도 바뀌지 않은 채 무한히 되풀이된다는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이 떠오른다. 그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현재의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