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프랑스적인 삶

마음닦기/독서

by 빛살 2026. 4. 7. 12:38

본문

 

프랑스적인 삶/장폴 뒤부아, 함유선/밝은세상/2006.2.3.

장폴 뒤부아의 작품을 처음으로 접했다.
표지에서 내가 겪은 2006년 2월 비 내리는 파리 풍경의 우울함이 배어나왔다.
작품의 배경은 스페인과 가까운 남 프랑스 틀루즈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래도 우울함이 바탕에 깔려 있다.
1인칭 시점의 고백체로 역동적인 사건보다 자신의 심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400쪽에 가까운 분량이 글로 빼곡히 차 있어 지루함이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읽고 난 후 묵직한 여운이 남았다.
"내 가족 모두를 생각했다. 그 의혹의 순간에, 그토록 많은 사람이 나와 함께 있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에, 그들은 나에게 어떤 도움이나 위안도 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놀라지도 않았다. 인생은 우리를 다른 사람과 묶어놓고서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존재의 시간에, 우리가 아무 것도 아니라기보다는 차라리 단지 그 무엇이라는 것을 믿게 하는 보일 듯 말 듯한 가는 줄에 지나지 않으니까.'(393)

각 장이 1. 샤를 드골(1958.1.8.-1969.4.28.)에서 9. 자크 시라크(2002.5.-)로 구성되어 있다. 일상적인 삶이 정치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시기가 대체로 나의 인생 역정과 비슷해 관심이 갔다.

54세인 '나(폴 블릭)'가 회상하는 형식이다. 그의 솔직함이 마음에 들었다.
작품 속의 나는 1968년 5월을 직접 겪은 68세대의 좌파 지식인으로 체제 비판적이다.
"학교든 대학이든 결코 사람을 수련시키거나 성숙하게 만들어가는 장소로 여겨지지 않았다. 차라리 주문에 따라  공장과 사무실을 채우는 임무를 맡은 분류센터쯤으로 여겨졌다."(54)
병역을 의도적으로 기피하고 직업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우리의 삶을 조금씩 갉아먹는, 간단히 말하면 비참한 직업이었다. 우리를 죽이는 것은 아니지만 날마다 행복이라는 건강한 근육을 마비시키면서 월급을 받는 일종의 작은 암 덩어리였다."(85)

재벌가의 외동딸과 결혼하여 육아를 전담하다가 장인의 추천으로 사진에 몰두하여 책 <프랑스의 나무>와 <세계의 나무>에 실린 사진으로 많은 인세를 받게 된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미테랑이 자신이 좋아하는 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두 차례나 부탁하지만 '사람은 찍지 않는다'는 신념을 핑게로 거절한다. 이로 인해 우파인 장모와 사회주의자인 어머니로부터 동시에 비난을 받게 된다. 대통령이라는 이름이 갖는 권력을 느낄 수 있었다. 화자는 미테랑이 1930년대 극우집단인 '국가 의용군' 참여에 대해서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권력지향적인 우리 정치현실이 떠올랐다.
태평성대는 개인의 삶이 오롯이 보전되는 시기가 아닐까!
"황제의 힘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擊壤歌/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何有於我哉)
"신동엽의 '산문시1'" 속의 세계
“조금만 비켜 주십시오. 당신 때문에 햇빛이 들어오지 않습니다.”(디오게네스와 알렉산더의 대화)가 떠올랐다.

국가주의(전체주의)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일본인 며느리의 친척인 마라토너에 대한 일화가 나와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다. 고키치 쓰부라야(円谷 幸吉, 1940~1968)라는 인물과 연결된다. 그는 1964년 도쿄 올림픽의 영웅이자, 국가적 기대라는 무거운 압박 속에서 비극적인 삶을 마감한 인물이다. 1968년 1월 9일, 멕시코시티 올림픽을 불과 몇 달 앞두고 자위대 체육학교 기숙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27세. "고키치는 이제 완전히 지쳐서 더 이상 달릴 수 없습니다" ​그의 죽음은 올림픽과 국가주의가 개인에게 가하는 과도한 압박을 상징하는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또 하나, 작품의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 '성(sex)에 관한 욕구'이다.
청소년기 자위문제(다비드 로샤스의 기상천외한 자위행위- 남미 소설: 말미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복숭아), 죄의식 없는 혼외 정사 등. 주인공도 아내의 배신으로 많은 빚을 지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 인물들이 혼외정사에 대해 너그럽다. 미테랑의 장례식에도 그의 부인은 혼외자가 장례식에 참여하게 한다.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이끌어 가는 정치 세계와 본능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들의 세계는 모두 혼란스럽다. 하지만 두 세계가 얽혀 있으니 더욱 혼란스러운 것 같지만 서로의 관계의 끈을 확인해 나가면 될 것 같다. 그 관계들 사이에서 개인은 아주 작지만 또한 전부이기도 하다.

'마음닦기 >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친구 같은 나무 하나쯤은  (0) 2026.04.26
숲을 읽는 사람  (0) 2026.04.25
보르헤스의 말  (1) 2026.03.21
픽션들  (0) 2026.03.21
공존의 정치 허대만  (1) 2026.03.11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