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마간산(走馬看山) 중국 여행기 : 첫째 날 (2002년 8월 13일 화요일)
비행기 안에서
김해 공항을 떠나 북경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
저 밑으로 흰 구름이 눈부시게 펼쳐져 있다. 맨발로 구름 위를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만 힘을 주어도 통통 튀어오를 것만 같이 탄력이 있어 보인다. 작동법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디지털 카메라에 자꾸 마음이 쏠린다. ‘시험 삼아 한 컷 찍어 봐. 인터넷 사이트에는 비행기 안에서 하늘을 찍은 사진이 심심찮게 올라오던데.’ 마음을 고쳐먹고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잠시 저 구름 밑의 세상은 잊어버리고, 새롭게 펼쳐질 6박 7일의 시간 속으로 빠져 들어 가자.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될 일 하나. 중국 과자 다섯 봉지.
우리 집은 방학을 하면 무조건 원주 할아버지 댁으로 올라간다. 하지만 이 번 여름에는 사정이 있어서 막내와 둘이서만 갔다 왔다. 일주일 정도 떨어져 지내는 것도 섭섭한지 아내가 막내에게 물었다. ‘그 동안 엄마가 보고 싶으면 어떻게 할래?’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나오는 대답, ‘과자로 달래면 돼.’ 과자를 엄마보다 더 사랑하는 나은이. 홍천에서 조그만 구멍가게를 하는 고모집에서 과자를 한 아름 안고 짓던 그 행복한 표정. 나은이에게 중국 과자 다섯 봉지로 감동을 선사하는 일, 잊어서는 안 되겠지.
이화원 - 은은히 풍기는 야릇한 냄새
안개인지 스모그인지 분간이 안 되는 물질로 뿌옇게 뒤덮혀 있는 북경 시가지를 지나 청나라 황실 여름 별장인 이화원(颐和园 Yíhéyuán )에 도착했다. 정문격인 동궁문을 들어서니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대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건물의 구조와 배치가 사뭇 답답하게 느껴졌다. 인수전, 낙수당을 지나 장랑 앞에 이르니 드넓은 호수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화원의 4분의 3을 차지하고 있다는 곤명호(昆明湖). 강희제 · 옹정제와 함께 청나라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건륭제가 이룩한 인공 호수이다. 어찌나 드넓은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호수를 파면서 나온 흙으로 만든 산이 곤명호와 함께 이화원의 중심이 되는 만수산이라고 한다. 원래 곤명이라는 이름은 중국 서부에 있는 지명인데 한나라 무제가 곤명 지방을 평정한 후 수도인 장안에다가 곤명호라는 호수를 파고 수군을 조련했다고 한다. 이 일을 본떠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장랑을 따라 걷다가 유람선을 타는 곳까지 오니 돌로 만든 배가 있다. 세상에 돌로 만든 배라니! 왜 굳이 돌로 배를 만들었을까? 청안방(清晏舫- 石舫)이라 불리는 이 배는 청나라 말기의 여걸, 서태후가 만들었다. 한 무제는 '백성은 물이고 황제는 배다. 물이 없다면 어찌 배가 뜰 수 있겠는가' 라며 덕치(德治)를 주장했다고 한다. 이 고사(古事)에 빗대어 서태후는 돌로 배를 만들면서 '물이 아무리 요동치더라도 결코 청나라 황실은 뒤집어지지 않으리라'라는 뜻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서태후의 오만함을 엿볼 수 있다.
서태후 또는 자희태후.
귀족 출신이지만 전란으로 인하여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많은 고생을 했다. 그러다가 17살에 궁녀로 뽑히어 황궁에 들어갔고, 후에 제9대 함풍황제의 귀비가 되었다. 제10대 동치황제의 생모이자 제11대 광서황제의 이모다. 제12대 황제가 청조의 마지막 황제 선통제(溥仪 Pǔyí )이다. 동치, 광서 황제를 대신하여 중국을 통치한 기간이 48년이나 된다.
그녀는 극히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는데 하루 식사비가 백은으로 3kg 들었다고 한다. 그 당시 이 돈으로 5000kg의 쌀을 살 수 있었으며, 만 명의 농민이 하루를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인물 됨됨이도 교만하여 전화하는 사람이 무릎을 꿇고 전화하는지 앉아서 하는지 알 수 없다며 이화원에 전화 설치를 반대했다고 한다.
아편 전쟁등 서구 열강의 침탈로 국운이 위태롭던 시기에 개인의 휴식 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해군 군비로 이화원을 재건한 서태후. 결국 이 일 때문에 중국의 해군력은 급격하게 약화되었고 결국 영국과의 해전에서 패배해 홍콩을 100년간이나 내어 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화원을 유람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사라지지 않았던 냄새.
못 참을 정도로 자극적이지는 않았지만 왠지 불쾌한 느낌을 주던 냄새. 중국 특유의 향신료 때문인가 했지만 주위에 민가나 음식점은 눈에 띄지 않았다. 나중에 상해에서 ‘예원’을 나와 비슷하지만 좀더 자극적인 냄새를 맡고 가이드에게 물어보았더니 아마 물이 썩는 냄새일 거라는 대답을 들었다. 어쩌면 이화원의 곤명호도 썩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북경 교예단 - 뜨거워 지는 눈시울
저녁을 먹고 천지극장이라는 곳에서 북경 교예단의 묘기를 구경했다. 중국에서는 서커스를 잡기(杂技zájì)라고 하며 ‘자’라고 발음한단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서커스가 워낙 유명해 조금만 늦게 가도 자리가 없다고 한다. 그러면 할 수 없이 바닥에 신문을 깔고 구경을 해야 하는데 신문을 가리키는 중국말(报纸 bàozhǐ 빠오)이 상당히 야릇하게 들려 모두들 웃었다.
말이 나온 김에 중국말 몇 마디. ‘쉰콜라(辛苦了xīnkǔle신쿨러)’는 콜라가 쉬었다는 말이 아니라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뜻, ‘수이(水 shuǐ )’는 ‘물’, ‘차아’는 ‘차(茶 chá)’, ‘니하오(마)’는 ‘안녕(하세요)’, ‘쎄’는 ‘감사합니다’라는 뜻이다. 발음하기가 가장 어려웠던 말은 ‘당신 미인입니다’라는 뜻의 ‘니 표올리에’(你漂亮啊!nǐpiàolianga니피아오량아). 우리가 가장 많이 사용한 말은 ‘따꺼(大哥dàgē)’. 우리말의 ‘형’에 해당한다.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은 ‘이 따꺼’, 안씨 성을 가진 사람은 ‘안 따꺼’. 덕분에 가장 많이 불린 사람은 조씨 성을 가진 사람. 뭐라고 했을까?
교예 단원들은 모두 소년, 소녀들이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놀라운 묘기에 모두들 긴장 속에서 숨을 죽였다. 그러면서도 쉴 새 없이 카메라 불빛이 터지고 아낌없는 박수 소리가 극장을 울렸다. 하지만 너무 잘 생긴 사람은 차가워 보이듯,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묘기는 비인간적으로 느껴졌다. 특히 내 딸 또래의 어린아이가 나왔을 때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저 하나하나의 동작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흘렸을 땀과 눈물, 그리고 무서운 집중력과 고독. 어린아이가 견뎌내기에는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닐까. 자꾸 무너지는 감정을 숨기기 위해서 열심히 박수를 쳤다.
나와 같은 느낌을 받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숙소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물어 보지도 않았는데 가이드가 교예단원들은 모두 자신이 원해서 하는 것이고, 수입도 상당히 많다고 말해 준다.
차차 중국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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