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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주마간산 중국 여행기3

취미활동/해외여행

by 빛살 2007. 9. 5.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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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간산(走馬看山) 중국 여행기 :셋째 날 (2002년 8월 15일 목요일)


천안문 광장 - 끝없는 행렬

북경의 마지막 여정인 자금성으로 향했다. 뿌연 대기 속에서 북경도 곳곳에서 공사 중이었다.

중국의 현대사가 살아 숨쉬는 천안문 광장.

광장으로 들어서자 중국의 여느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모택동 기념관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가이드의 말로는 몇 시간을 기다려야 기념관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자세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에드가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 별’에서 느꼈던 인민에 봉사하는 모택동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하지만 대약진 운동의 실패와 문화대혁명으로 역사의 물길을 되돌려 중국 인민을 황폐화시켰던 인물이 아닌가? 그런데 추모의 발길이 저렇게 매일 끊이지 않고 이어지다니. 그 역사적 오류와 지금의 추모의 행렬 사이의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천안문 사태로 처음으로 인민의 군대가 인민을 짓밟았던 장소이기도 한 이 곳. 모택동 기념관 바로 뒤에 우뚝 솟아 있는 인민영웅기념탑이 쓸쓸해 보였다. 오히려 추모의 행렬이 이곳으로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사후에도 다른 지도자들과 달리 그 존재를 부정당하지 않고 중국인들 사이에 살아있는 모택동이라는 인물이, 아니 중국인들이 신비롭게 느껴졌다. 
 

 

자금성(紫禁城) - 금단의 장소

천제가 사는 자미궁(紫微宮=紫微垣, 별자리 이름)과 같이 금지 구역이라는 뜻으로 자금성(紫禁城)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천안문을 지나 정문인 오문(午門) 앞에 이르렀다. 황제가 칙서를 발표하거나 원정 명령을 내리고 대신들의 죄를 다스리는 곳이었다고 한다. 문루를 올려다보니 위압감이 느껴진다. 홍순학의 ‘연행가’를 보면 조선에서 북경까지 오는데 걸리는 시간이 두 달이나 된다. 두 달 동안의 고생 끝에 이곳에 와서 조선의 사신들은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내금수교를 건너 태화문을 통과하니 자금성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태화전이 버티고 있다. 태화전 앞의 광장에는 벽돌들이 박혀 있었다. 자객이 땅속으로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박아 두었다고 한다. 자객이 겁나 나무 하나 없는 궁안의 모습이 삭막해 보였다. 이런 호화로운 장소에서도 항상 신분상의 위협을 느꼈나 보다. 태화전 앞에 있는 청동으로 만든 학을 보며 궁궐의 마지막 주인 ‘부의’의 일생을 그린 ‘마지막 황제’라는 영화를 떠올렸다. 천 년의 영화도 못 되는 것을……

북적대는 사람들 틈을 헤치고 북문인 신무문을 나섰다. 뒤돌아보니 출입문 위로 고궁박물관이라고 쓴 현판이 보인다.

발걸음을 옮겨 경산공원으로 갔다. 자금성을 쌓으면서 나온 쓰레기를 모아 둔 것이 산이 되었다고 하기도 하고 전쟁을 대비해 석탄을 쌓아 놓고 위장한 것이 경산이라고도 한다. 조경이 잘된 나지막한 산을 올라 정상에 서니 누각에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남쪽으로 바라보니 희뿌연 대기 속에서 자금성이 내려다보인다. 북서쪽으로는 북해 공원의 호수가 보였다. 내려오다가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제가 이자성의 반군에 쫓겨 목을 맸다는 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를 보고 청나라 황제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밖의 여정

협화의과대학이라는 곳에서 진맥과 간단한 마사지를 받은 후 점심을 먹었다. 좁은 식당에 너무 많은 손님들이 들어차 난리법석이었다. 식사를 마친 후 발마사지를 받았다. 무좀 때문에 부끄럽기도 했지만 성격상 다른 사람이 내 몸에 손을 대는 것을 싫어해서 그런지 그 효과는 그저 그런 것 같았다.

발마사지 후 왕부정 거리로 갔다. 어젯밤에 와 본 곳이라 별다른 느낌이 들지 않았다. 한결이와 나은이에게 보여주려고 전차와 이층 버스, 두 칸짜리 버스를 카메라에 담으려고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겼지만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저녁 식사 후 계림행 비행기를 타려고 비행장으로 갔다. 하지만 예정된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지체되었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중국에서 12시간 이내의 연착은 정상이라고 한다. 무감각하다고 해야 하나. 통이 크다고 해야 하나. 밤 9시가 훨씬 넘어서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두 시간여의 비행 끝에 계림에 도착하니 12시가 다 되어간다.

공항의 풍경이 남국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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