食荔支
羅浮山下四時春
盧橘楊梅次第新
日啖荔支三百顆
不辭長作嶺南人
여지를 먹는 재미
나부산 기슭은 사철이 다 봄이라.
비파와 양매가 차례로 나는 구나.
날마다 여지를 3백 개씩 먹으니
길이길이 영남 사람 되는 것도 좋겠구나.
*여지: 열대과일. 리치
*나부산: 광둥성 보뤄현(博羅縣)에 있는 산으로 혜주에서 가깝다. 도교의 성지이다.
*노귤: 비파
*장작: 길이 ~이 되다.
*영남: 오령(五嶺) 이남의 지역, 즉 지금의 광둥성과 광시좡족자치구를 가리킨다.
<해제>
소성 3년(1096) 여름에 혜주에서 여지를 먹은 즐거움을 해학적으로 노래한 것이다.
소식(蘇軾)과 장돈(章惇)은 과거 급제 동기였는데 장돈은 소식을 유난히 미워했다. 철종 소성 원년(1094) 상서좌복야겸문하시랑(尙書左僕射兼門下侍郞)이 된 장돈은 갖은 모함으로 소식을 혜주(惠州)로 유배 보낸다. 혜주는 지금의 광동성 심천(深圳) 부근으로 북위 23도 정도 되는 아열대지방이다. 그곳은 중화문화권 바깥이라고 할 수 있는 미개지로 무더위와 장기(瘴氣) 때문에 온대지방 사람은 견디기 힘든 곳이었다. 그런 곳이라면 아무리 낙천적인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 장돈의 속셈이었다. 그러나 장돈의 속셈과 달리 소식은 혜주에서도 거뜬하게 견뎌냈다.
혜주는 1년 내내 날씨가 따뜻했고 따라서 갖가지 아열대 과일이 차례대로 산출되었다. 그 중에서도 노란색 과육에 살구 맛이 많이 나는 비파(枇杷)와 붉은색 표면에 좁쌀 같은 돌기가 있는 것이 딸기와 비슷한 양매(楊梅)가 특히 맛있었다. 그러나 이것들보다 더 맛있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여름철에 생산되는 여지였다. 수분이 많고 달착지근하여 독특한 맛을 지닌 여지는 더운 지방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광동지방 같은 남방에서나 생산되지 북방에서는 생산되지 않는다.
그래서 당나라 때는 여지를 너무나 좋아한 양귀비에게 싱싱한 여지를 갖다 바치기 위해 5천 리는 족히 될 광동에서 장안까지의 멀고 험한 길을 있는 힘을 다해 질주하느라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어야 했다. 그러기에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은 <화청궁을 지나다가(過華淸宮絶句)>를 지어 “뽀얀 먼지 일으키며 말을 달려가면 왕비의 입가에 만족한 웃음, 아무도 모르리라 여지가 온 것임을(一騎紅塵妃子笑, 無人知是?枝來)” 하고 꼬집었고, 소식 자신도 <여지의 탄식하며(荔枝歎)>을 지어 “궁중 미인 크게 한 번 웃게 하기 위하여, 먼지 속에 뿌린 피가 천 년 동안 흘렀다네(宮中美人一破顔, 驚塵?血流千載)”라고 풍자했다.
이 시 때문에 소식은 해남도로 유배를 가게 된다.
[소식]東坡八首其二 (0) | 2014.06.28 |
---|---|
[소식]琴詩 (0) | 2014.06.28 |
[소식]海棠 (0) | 2014.06.28 |
[소식]百步洪二首其一 (0) | 2014.06.28 |
[소식]飮湖上初晴後雨 (0) | 2014.06.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