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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마음닦기/독서

by 빛살 2020. 3. 12.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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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알베르트 카뮈, 김화영 옮김/민음사/2019.08.08.

 

한 가지의 감옥살이를 다른 한 가지의 감옥살이에 빗대어 대신 표현해 보는 것은, 어느 것이건 실제로 존재하는 그 무엇을 존재하지 않는 그 무엇에 빗대어 표현해 본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합당한 일이다.-다니엘 디포

 

페스트는 카뮈가 겪은 2차세계대전의 내면화 과정을 상징한다고 하지만 판데믹의 공포를 겪고 있는 현실에서 전염병 그 자체로 이해하는 것이 더 생동감을 준다.

 

194*년 알제리의 오랑시, 416일 의사 베르나르 리유(리외)는 자기 진찰실을 나서다가 층계참 한복판에서 쥐의 시체를 발견한다. 쥐의 시체는 점점 늘어나지만 그 원인에 대해 설왕설래하다가 초기 대응에 실패한다. 경험 많은 노의사 카스텔의 출현으로 페스트가 언급되기 시작한다.

 

오랑시는 폐쇄되고 사람들은 페스트의 공포 속에서 생활하게 되는데 사람들마다 대응하는 방식이 다르다.

 

서술자로 나오는 작가의 대리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의사 베르나르 리유(리외)는 페스트와 맞서 싸운다. 시청의 임시직 보조 서기 조제프 그랑, 자원봉사자들로 이루어진 보건대를 조직한 장 타루 등이 그와 같이 한다.

 

파늘루 신부는 첫 번째 설교에서 병은 신이 내린 형벌이며. 여러분은 그 불행을 겪어 마땅하고, 재앙이 오히려 인간의 길을 제시한다는 초월적이며 체념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에 대해 리유와 타루는 체념하고서 페스트를 용인한다는 것은 미친 사람이나 눈먼 사람이나 비겁한 사람의 태도이고, 그 병고의 유익한 점을 증명하려 하기 전에 우선 치료부터해야 한다고 말한다.

 

범죄자 코타르는 페스트 덕분에 불안에서 벗어나 활발하게 살아간다.

 

레몽 랑베르는 파리 신문사 기자로 취재 차 오랑시에 왔다가 발이 묶이게 되었는데 파리에 사랑하는 아내가 있다. 그는 오랑시에서 벗어나고자하는 도피적 태도를 보인다.

 

랑베르는 타루와 리유의 활동을 보고 "나는 영웅주의를 믿지 않습니다. 나는 그것이 쉬운 일이라는 것을 알고, 그것은 살인적인 것임을 배웠습니다. 내가 흥미를 느끼는 것은, 사랑하는 것을 위해서 살고 사랑하는 것을 위해서 죽는 일입니다."라고 말한다.

"이 모든 일은 영웅주의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성실성의 문제입니다. 아마 비웃음을 자아낼 만한 생각일지도 모르나,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리유의 대답이다.

성실성이 대체 뭐냐고 묻는 랑베르에게 내 경우로 말하면, 그것은 자기가 맡은 직분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고 대답한다. 그의 집을 떠나면서 타루는 랑베르에게 말한다.

"리유의 부인이 여기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요양소에 있다는 것을 아시는지요

이튿날 꼭두새벽에 도시를 떠날 때까지 함께 일하겠다고 한다.

 

리유는 보잘것없고 존재감도 없는 영웅, 가진 것이라고는 약간의 선량한 마음과 아무리 봐도 우스꽝스럽기만 한 이상밖에는 없는 묵묵히 자신의 직분을 다하는 조제프 그랑을 실질적인 영웅으로 제시한다.그는 보건대를 살아움직이게 하는 그 조용한 미덕의 실질적 대표자, 페스트에 감염되었다가 최초로 살아나 승리의 분기점이 된 사람이다.

 

떠나기로 결정된 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랑베르는 리유 앞에 나타난다.

랑베르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는데 자기 생각에 변함은 없지만 그래도 자기가 이곳을 떠난다면 부끄러운 마음을 지울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남겨 두고 온 그 여자를 사랑하는 것도 거북해지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리유는 몸을 일으켜 세워 얹으며 무뚝뚝한 목소리로,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행복을 택하는 것이 부끄러울 게 무어냐고 말했다.

그렇습니다.” 랑베르가 말했다. “그러나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

나는 늘 이 도시와는 남이고 여러분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고 생각해 왔어요. 그러나 이제 볼 대로 다 보고 나니, 내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나도 이곳 사람이라는 것을 알겠어요. 이 사건은 우리들 모두에게 관련된 것입니다"

 

10월 하순 페스트에 걸린 예심판사 오통 씨의 어린 아들에게 노의사 카스텔이 만든 혈청을 실험하는 장면을 많은 사람들이 지켜본다. 혈청 때문에 어린아이는 남들보다 긴 임종의 고통을 겪는다. 그것을 본 리유는 신부에게 따지듯 말한다.

, 이 애는, 적어도 아무 죄가 없었습니다. 당신도 그것은 알고 계실 거예요!”

나는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서 달리 생각하고 있어요. 어린애들마저도 주리를 틀도록 창조해 놓은 이 세상이라면 나는 죽어도 거부하겠습니다.“

 

인간 구원보다는 인간 건강이 우선이라는 실존주의적 의식이다.

 

신부의 두 번째 설교는 다소 혼란에 빠진 모습 속에서도 '우리'라는 연대의식이 나타나지만 신앙의 본질에서는 벗어나지 않는다. 신부는 병에 걸리지만 신부가 의사의 진찰을 받는다면 그것은 하느님이 내린 벌인 병을 치료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순이라며 진료를 거부하다가 병명 미상으로 죽는다.

 

타루는 검사의 아들로 17세 때 사형을 구형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충격을 받고 가출한다. 사람을 죽게 만들거나 또는 죽게 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모든 걸 거부하기로 결심하고 보건대를 조직했다.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그 피해를 입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늘 스스로를 살펴야지 자칫 방심하다가는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병독을 옮겨 주고 맙니다. 내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성인이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봉사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고자 했던 그도 한 번 약을 먹지 않은 실수로 죽게 된다.

 

12월 말경 오랑은 페스트에서 회복되고 쥐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2월 어느 화창한 날 폐쇄되었던 오랑시의 문이 활짝 열린다.

마지막 부분에서 서술자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인간을 초월해, 자기로서는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을 지향하고 있던 사람들은 결국엔 어떤 대답도 얻지 못했다.”

 

적어도 가끔씩은 기쁨이라는 게 찾아와서 인간만으로, 인간의 가난하지만 동시에 엄청난 사랑만으로 만족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보람을 주는 것은 정당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인간에게는 경멸해야 할 것보다는 찬양해야 할 것이 더 많다는 사실만이라도 말해 두기 위하여, 지금 여기서 끝맺으려고 하는 이야기를 글로 쓸 결심을 했다."

 

"시내에서 올라오는 환희의 외침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리유는 그러한 환희가 항상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그 기쁨에 들떠 있는 군중이 모르는 사실, 즉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그 균은 수십 년간 가구나 옷가지들 속에서 잠자고 있을 수 있고, 방이나 지하실이나 트렁크나 손수건이나 낡은 서류 같은 것들 속에서 꾸준히 살아남아 있다가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들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실을 똑바로 보고 자기의 직분을 성실히 수행하며 서로 연대하여 힘을 모으고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않아야 우리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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