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신문에 연재된 짤막한 글들을 주제별로 묶어 놓았다.
읽기에 편했지만 분량에 비해 너무 많은 내용을 말하려다 보니 이해시키는 글이 아니라 이해를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글쓴이는 사회비평적 에세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동의보감의 핵심은 '순환과 운동'이다.
잠을 못 이룰 때 음악을 들으면서 우리의 삶도 음악처럼 '반복과 변조'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늘상 반복되면서도 똑 같지는 않은 생활.
모든 것들의 조화.
형기(形氣 형상과 기운)가 갖추어진 다음에 아(痾)가 생긴다. 아란 채(瘵)이고, 채란 병(病)을 말하는 것이다.
채란 피로가 누적된 상태, 아는 원초적 불균형이다.(p.26)
순환하지 못하고 뭉치고 막히면 병이 되는 것이다(通即不痛 不通卽痛).
'담음'(痰飮 몸안의 진액이 제대로 순환되지 못하여 만들어진 병리적인 물질), '기울'(氣鬱 기의 순환이 원활하지 않아 정체되어 막힘)이 병이 된다.
태과(太過 너무 지나침)와 불급(不及 미치지 못함)도 병의 원천이 된다.
균형과 조화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수명이나 기질을 결정하는 가장 기본적인 척도는 호흡이라는 말이 이해된다.
호흡은 반복되면서 안정적이어야 하고 스스로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동의보감의 핵심 내용이다.
순환과 운동을 강조하면서도 전체적인 목소리가 일방적이다.
<성형천국, 마음지옥!>이라는 글에서 성형을 통해 외모지상주의를 매몰차게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Let美人'이라는 TV 프로그램을 보고 성형이 어떤 사람에게는 마음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치료의 기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취업 면접 등에서 외모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예외적인 상황이나 성형을 부추기는 문화 등은 살펴보지 않고 성형만을 문제삼는 것은 상대는 이해하려 하지 않고 내 주장만 옳다는 '인정투쟁'이 떠올랐다.
글쓴이의 논리라면 트랜스젠더는 수용 가능할까?
이런 면에서 위험한 사고라고 생각한다.
<꿈은 병이다>에서도 꿈의 여러가지 순기능은 무시하고 거의 모든 청춘이 외면적인 성공만 추구하는 것처럼 말한다.
그래서 꿈이 필요없다는 주장에 이른다.
하지만 아름다운 꿈도 있다. 오히려 꿈이 없어서 불행한 청춘도 많다.
교직에 있으면서 급식 먹으러 등교하고 수업시간에는 잠만 자는 청춘들도 많이 보았다.
글쓴이의 박학다식은 인정하지만 백면서생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아기를 업어야 하는 세 가지 이유>우리 민족의 특수성을 너무 일반화시킨 것 같다.
세계에서 아이를 업어 키우는 민족은 몇 없다고 한다.
전체적으로도 이런 일반화가 많이 보인다.
<나는 별이다>를 읽으면서 '모두가 꽃이야'라는 국악동요가 떠올랐다.
온 세상이 아름다운 꽃들과 반짝이는 별들로 가득차는 상상을 했다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는 원래 간디의 'Village Swaraji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마을자치'에서 온 말이다.
자연스럽게 간디를 매개로 김종철 님의 '간디의 물레'가 연상되었다.
자치와 자율을 기반으로 한 작은 마을들의 연대.
이런 마을은 생태공동체로 코로나 이후 사회의 한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소한 지적질]
* 차면 비우고, 비운 뒤에 다시 채우고, 다만 이렇게 했을 뿐인데, 입적한 뒤에 미륵불이 되었다.(p. 216)
포대화상 이야기다.
포대화상은 당 말기부터 오대 십국 시대까지 명주(현 저장성 닝보시)에 실재했다는 전설적인 불승이다.
미륵은 인도 바라나국 바라문 출신으로 신비화되어 보살로 변하였다. 현재 도솔천에서 천인들을 교화하고 있다.
석가모니의 시대가 끝나면 그 뒤를 이어 미륵불이 되어 세상을 교화한다고 한다.
미륵이 포대화상보다 약 600년 정도 앞선다. 그러니 포대가 미륵이 될 수 없다.
미륵보살이 포대화상으로 화현(化現, 불보살이 중생을 교화 구제하려고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하여 세상에 나타남)한 것이다.
이외에도 '위기지학'(논어 헌문 25), ' 노자 도덕경 13장' (p.173)의 해석이 '북드라망'처럼 모호하다.
<부록, 내가 사랑하는 고전들>
임꺽정, 동의보감, 열하일기, 아Q정전, 홍루몽, 서유기, 돈키호테, 픽션들(보르헤스 단편집)이 소개되어 있다.
열하일기를 세계 최고의 여행기로, 홍루몽을 세계 최고의 소설로 단정하고 있다.
글쓴이의 문장에는 최고, 무조건과 같은 말들이 자주 보인다.
굉장히 주관적인 말 같다.
<백년 동안의 고독>에 질리기는 했지만 같은 남미문학인 픽션들을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