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 쉽게 읽힌다.
주인공 라비크는 독일인 외과의사이다.
무국적 난민들이 살고 있는 개선문 근처 '앙테르 나쇼날'에 머물면서 베버의 후원 아래 대리 수술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셰에라자드' 문지기인 러시아 중령 출신 보리스 모로소프와 우정을 나누며, 조앙 마루와 불안한 사랑을 나누고 있다. 이들의 사랑은 조앙 쪽에서 살펴야 할 것 같다. 의지할 곳 없는 난민으로 한 남자만 사랑할 수 없는 슬픔...
라비크는 게슈타포인 폰 하케를 잔인하게 죽인다.
그후 2차대전이 터지고 자신에게 위기가 닥치지만 루드비히 프레젠부르크라는 자신의 본명을 찾는다.
난민, 매춘, 가난 등등 어둡고 우울한 배경 속에서 흐릿한 조명의 카페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하는 이야기들 같다.
2편에서 하케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긴장감이 조성되고 책장도 더 빨리 넘어간다.
난민, 보복, 매춘, 전쟁, 생명 등등 생각할 거리가 많다.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살다가 자신의 이름을 찾는 마지막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해마(海馬, 바다코끼리) 몇백 마리가 해변에서 우글거린다. 사냥꾼이 그 속으로 들어가 몽둥이로 한 마리씩 때려잡는다. 힘을 합치면 그런 사냥꾼 하나쯤 쉽게 눌러 죽일 수 있다. 하지만 그놈들은 누워 있기만 하고, 사냥꾼이 다가와 죽이는 걸 뻔히 보면서도 꼼짝도 하지 않는다. 사냥꾼은 그저 옆에 있는 해마를 죽일 뿐이다. 한 마리씩 차례대로. 유럽이 바로 해마들의 꼴이 아닌가. 문명의 일몰. 지쳐 버리고 형체도 없는 신들의 황혼. 인권이라는 공허한 깃발들. 유럽 대륙의 염가 대매출. 닥쳐오는 대홍수. 최후의 가격을 둘러싼 장사치들의 흥정. 화산 위에서 여전히 펼쳐지고 있는 비탄의 춤. 민족들은 또다시 도살장으로 천천히 끌려간다. 양이 희생을 당하더라도 벼룩들은 살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1권 168쪽)
"우린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할 필요가 없어. 만사가 미리 짜 놓은 거고, 미리 씹어 놓은 거고, 미리 느낀 것뿐이야. 통조림이야. 열기만 하면 되는 거지. 하루에 세 번씩 집으로 배달되니까. 자기가 재배하고 길러서, 질문과 의심과 그리움의 불에 올려놓고 끓이는 일은 이제 없어졌어. 그러니 통조림이지." 그는 씩 웃었다. "우리는 편하게 사는 게 아니야, 보리스. 값싸게 살고 있을 뿐이야."(1권 251쪽)
바로 그거다! 갑자기 그는 깨달았다. 바로 그거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 하고 생각하며 피곤해하고 잊어버리려 하는 것, 그것이 놈들을 더 강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바로 그거다! 한 놈이라도 더 줄이는 거다! 그래 한 놈이라도 더 줄인다. 그게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할지라도, 또 전부이기도 하다! 전부다!(2권 241-242쪽)
매춘은 악덕이 아니라, 하나의 의젓한 직업이었다. 그것이 여자들을 타락으로부터 지켜 주었던 것이다.(2권 30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