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그림책을 보듯 맺힌 데 없는 동글동글한 그림들이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상적인 일들을 어린이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독자로 하여금 어린이의 세계에 빠져들게 한다.
어린이의 세계는 진지함이 바탕이다.
어린이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도 좋았다.
“나는 어린이에게 느긋한 어른이 되는 것이 넓게 보아 세상을 좋게 변화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이를 기다려 주는 순간에는 작은 보람이나 기쁨도 있다. 그것도 성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린이와 어른은 함께 자랄 수 있다.(20쪽)
<그리스인 조르바, 10. 218-219쪽, 문학과 지성사.>에 나오는 ‘나비고치와 입김’이 겹친다. ‘천천히’ 기다릴 줄 알자.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바다 건너까지 유학을 가겠는가? 어린이의 부풀리기는 하나의 선언이다. ‘여기까지 자라겠다고 하는 선언”(28쪽)
“우주가 무수히 많은 곳에서 무수히 많은 방식으로 아름다운 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그러면서도 우주는 활기차고 사무적이다. 메리 올리버 <완벽한 날들> 중에서”(91쪽)
“어떤 어린이는 여전히 TV로 세상을 배운다. 주로 외로운 어린이들이 그럴 것이다. 어린이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가장 외로운 어린이를 기준으로 만들어지면 좋겠다.”(102쪽)
“어린이에게는 어른들이 환경이고 세계라는 사실을 그날 다시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하다.”(146쪽)
“어린이는 이성으로 가르친다!”(151쪽)
“삶의 순간순간은 새싹이 나고 봉오리가 맺히고 꽃이 피고 시드는 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지나고 보면 그런 단계를 가졌을지 몰라도, 살아있는 한 모든 순간은 똑같은 가치를 가진다. 내 말은 다섯 살 어린이도 나와 같은 한 명의 인간이라는 것이다.”(163쪽)
“멀리 떨어진 사물의 크기는 비교하기가 어려운 법인데, 어린이는 어른보다 두 눈 사이가 좁기 때문에 ‘비교하기 어려운 지점’이 어른보다 가까이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가 돌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적은 단지 통제 불능이어서가 아니라 감각이 다른 탓도 있을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 어린 시절 살던 곳에 가 보면 동네가 ‘좁아’ 보이는 것 역시 공간 감각의 차이 때문이라고 한다.”(200쪽)
“어린이는 공공장소에서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어디서 배워야 할까? 당연하게도 공공장소에서 배워야 한다. 좋은 곳에서 좋은 대접을 받으면서 그에 걸맞은 행동을 배워야 한다.”(213쪽)-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아프리카 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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