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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

마음닦기/독서

by 빛살 2021. 12. 12.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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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재가 노래하는 곳/델리아 오언스 작 김선형 역/살림/2020.11.16.

 

1969년 10월 30일 아침 체이스 앤드루스의 시체가 발견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범인을 추적하는 추리소설의 기법이다. 곧이어 1952년 6살 카야(캐서린 대니엘 클라크, 마쉬걸marsh girl)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카야의 성장과정을 다루고 있다. 이성에 눈 떠가는 카야와 테이트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특히 155-156쪽의 시카모어 낙엽 속 입맞춤 장면이 삼삼하다.

 

신비롭기까지 한 배경, 뚜렷한 성격의 인물들, 과거와 현재의 짤막짤막한 교차를 통해 인물들의 성장과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이 박진감 있게 펼쳐진다.  '페이지터너(pageturner 페이지 넘기기 바쁠 정도로 흥미진진한 책)'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완독 후 '아하!'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마치 영화 '기생충' 후반에서 감독에게 농락당했던 느낌이라고 할까.

 

"뭐, 하지만 이거 좀 보세요." 조가 커다랗게 휘어진 모래가 거의 완벽한 반원형을 그린 자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뱃머리가 둥근 보트를 끌고 올라온 자국일 수도 있어요."(95쪽)

부 보안관 조의 말에서 범인이 카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체이스가 죽은 날 밤 카야의 보트를 보았다는 어부, 카야의 집에 있던 빨간 모자의 털로 카야가 범인임을 직감했으나 그린빌에 갔던 알리바이는 풀리지 않았었다. 체이스가 최고의 쿼터백이었으므로 혹시 테이트가 공범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제발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며 읽어나가다 아버지(스커퍼)의 사망 소식을 듣는 장면에서는 테이트의 짓이라는 생각에 잠시 가슴이 내려앉기도 했었다. 변호사 톰 밀턴의 활약으로 카야가 무죄로 석방되었을 때 모든 것이 해결된 줄 알았다. 그런데 카야가 죽은 후 판잣집에서 발견된 '조개 목걸이'로 모든 것이 뒤집힌다. 반전의 연속이었다.

 

"카야, 조심해, 꼭. 누가 와도 절대 집 안에 들어가지 마. 널 잡아갈 수도 있어. 습지 깊은 데로 도망가서 덤불에 꼭꼭 숨어. 발자국 지우는 거 잊지 말고. 오빠가 가르쳐줬잖아. 너도 아버지를 피해서 숨을 수 있어."(25쪽)

조디가 떠나면서 카야에게 한 말이다. 흔적 지우기는 카야의 생존 수단이었다.

 

체이스에게 배신당하고 이안류를 타는 모습(261-267쪽), 테이트가 빨간 모자를 준 시기(350쪽) 등도 살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카야는 물의 경계로 걸어갔다. 체이스는 이대로 포기할 사람이 아니다. 혼자 외톨이로 사는 건 그렇다 치자. 하지만 두려움에 떨며 사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죽을 때를 누가 결정한단 말인가?'(352쪽), 시 '브랜든비치의 상처받은 갈매기'에서도 살인 동기는 뚜렷하다.

 

문제의 발단은 사회적 차별에 있다.

바클리코브의 종교 성향은 열혈 강성 개신교였다. 아주 작은 마을인데도 교회가 네 군데나 있었고 전부 백인 전용이었다. 흑인들이 다니는 교회도 세 군데 더 있었다.(88쪽)

"유색인 마을의 처녀가 체이스 앤드루스가 자기를 습격해서 강간하려 했다고 고발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저들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을 거예요. 아무것도. " 카야의 목소리가 점점 더 날카롭고 높아졌다. "그 처녀만 죽도록 고생하겠죠. 뉴스에 기사가 나고. 사람들한테 창녀라고 손가락질받을 거예요. 그러니까, 나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점핑 아저씨도 아시잖아요. 제발,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세요."(374쪽)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캐서린 클라크를 소외시켰던 건가요, 아니면 우리가 소외시켰기 때문에 그녀가 우리와 달라진 건가요? 우리가 일원으로 받아주었다면, 지금 그녀는 우리 중 한 사람이 되었을 겁니다. 그녀를 먹이고 입히고 사랑해주었다면, 우리 교회와 집에 초대했다면, 그녀를 향한 편견도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오늘날 범인으로 기소되어 이 자리에 있지도 않았을 겁니다."(421쪽)

미국의 정신은 개신교와 실용정신이라고 한다. 개신교는 가부장적이고 차별적이다. 프롬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데에서 부성의 신격을 찾았다. 그는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는 사랑하되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가혹하고 잔인한 신이었다(<서울은 깊다>, 복수의 하느님). <배움의 발견>에서도 문제는 가부장적 폭력이었다. 역사적으로 흑인차별, 개신교의 차별금지법 반대 등도 이런 배경이 깔려 있을 것이다. 카야도 아버지에 의한 가정폭력으로 외톨이가 되었고 마쉬걸이라는 차별 속에서 고립이 심화되었다. 카야와 유색인 점핑과 메이블 부부의 연대는 기적 같은 일이다.

가부장적 제도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모악산 고은 시비에서도 느꼈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결코 낭만적이며 평화로운 곳이 아니다.

"저 숲속 깊은 곳, 야생동물이 야생동물답게 살고 있는 곳"(140쪽 테이트의 말)으로 원초적 충동이 지배하는 야생의 세계이다.

카야는 다른 반딧불을 바라보았다. 암컷들은 원하는 걸 얻어낸다. 처음에는 짝짓기 상대를, 다음에는 끼니를. 그저 신호를 바꾸기만 하면 됐다.(반딧불의 거짓 신호) 여기에는 윤리적 심판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악의 희롱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다른 참가자의 목숨을 희생시켜 그 대가로 힘차게 지속되는 생명이 있을 뿐이다. 생물학에서 옳고 그름이란, 같은 색채를 다른 불빛에 비추어보는 일이다.(179쪽)

야생의 질서에 의해 체이스를 죽인 것이다.

 

왜 상처받은 사람들이, 아직도 피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용서의 부담까지 짊어져야 하는 걸까?  카야는 대답하지 않았다.(247쪽) 용서를 비는 테이트에게 한 말이다. 가부장적 폭력의 희생자 '조동연'과 탄실 김명순이 떠올랐다. 2차 가해와 그리고 부당한 폭력에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

 

테이트와 유능한 변호사인 톰 밀턴은 왜 카야의 살인을 눈치채지 못했을까?
테이트는 아버지가 말한 진짜 남자의 조건을 생각했다. 거리낌 없이 울 수 있고, 심장으로 시와 오페라를 느낄 수 있고, 한 여자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세상에 못할 일이 없다.(441쪽)

테이트와 톰 밀턴도 카야를 기본적으로 마쉬걸로 파악하고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고도 여성을 주체적인 인격체로 파악하지 않고 대상화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한다. 카야를 온전한 한 인간으로 받아들이려 했다면 문제도 없었고, 문제가 있더라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테이트의 헌신으로 카야도 결국 인간의 사랑이 습지 생물들의 엽기적인 짝짓기 경쟁보다 훌륭하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지만, 삶은 또한 태고의 생존본능이 복잡하게 꼬인 인간의 유전자 어딘가에 여전히 바람직하지 못한 형태로 남아 있다는 가르침을 주었다.(448쪽)

 

인간 문명의 세계,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로버트 서비스, 토마스 무어, 에드워드 리어, 제임스 라이트, 골웨이 키널, 존 메이스필드, 에밀 디킨스의 시인들과 함께 '어맨다 해밀턴 AH'의 시들이 소개되었다. 카야의 마음을 잘 나타내주는 시들이라 누군지 궁금해 검색을 해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나중에 카야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헛웃음을 지었다. 잘도 속아넘어갔구나!

모래 군의 열두달(알도 레오폴드), 레베카(대프니 듀 모리에),  밀리차 코르유스라는 소프라노 가수도 이름이나마 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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