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에 살고 있는 남태식 님의 세 번째 시집이다.
망상가들은 자본주의 신화에 사로잡혀 부자와 성공을 으뜸으로 치는 사람들이다.
≪안개가 짙다. 안개가 짙으면 안개에 집중해야만 한다.
안개의 몸피를 더듬어 가늠하고 손가락 발가락의 수를 세어보아야 한다. 안개의 표정은 맑은가 어두운가, 입술은 여태껏 앙다문 채인가 배시시 열리는 중인가, 안개의 속살은 두꺼운가 부드러운가 또 얼마나 깊은가 음습한가 헤아려보아야 한다. 안개의 속살 사이에 들앉은 나무와 풀과 집과 그 안의 숨결들, 웃음들, 빈 들판의 눈물들, 쉼 없이 나뭇가지를 흔드는 한숨들을 코로 귀로 숨으로 느껴야 한다. 감전된 듯 감전된 듯 온 몸을 떨어야 한다. 언젠가는 걷힐 안개에 뒤따르는 햇살, 뒤따라 날아오르는 새떼들의 날갯짓 따위는 잠시, 어쩌면 오래도록 잊어야 한다.
바야흐로 때는 안개가 짙을 때, 어김없이 안개가 짙고, 지금 우리는 오직 이 안개에만 집중해야 한다.
―「집중」 전문≫
남태식 시인의 시는 직정적이기도 하고 거칠기도 하지만 거침이 없다. 이를 두고 혹자는 생경하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런데 ‘생경하다’는 익숙하지 않고 어색하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꾸며진 언어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이런 시를 보고 생경하다고 표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태식 시인은 언어는 생경한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날 것 그대로의 언어이고 꾸미지 않는 언어이다. 꾸며진 언어 타인의 시선에 갇힌 언어 세상의 가치에 순응하는 언어 그리하여 자본의 힘에 의해 상품으로 변질된 언어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남태식 시인의 시는 바로 이러한 언어를 거부하고 맨 몸의 언어로 저항한다. 그것을 통해 주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진실한 목소리를 회복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제 언어는 소통의 수단과 소통의 복잡한 미로 속에서 그 날 것의 생생함을 잃고 잘 포장된 상품으로만 존재한다. 꾸밈이 없는 맨 언어, 시인의 육성이 그대로 들리는 이 시집의 시어들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황정산(문학평론가)의 해설 맺음말
난주 (0) | 2021.12.20 |
---|---|
상처를 만지다 (0) | 2021.12.20 |
가재가 노래하는 곳 (0) | 2021.12.12 |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불교수업 (0) | 2021.11.30 |
조선의 뒷골목 풍경 (0) | 2021.1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