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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시끄러운 고독

마음닦기/독서

by 빛살 2023. 11. 13.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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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시끄러운 고독/보후밀 흐라발, 이창실 역/ 문학동네/2023.1.13.


태양만이 흑점을 지닐 권리가 있다(괴테)

이 작품의 권두언이다. 여러가지 해석이 있겠지만 뜨겁게 사는 존재만이 흔적을 남긴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다.

모두 8장, 132쪽이다.

거의 모든 장이  '35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로 시작된다.
쓰레기, 폐수, 파리떼, 생쥐가 뒤얽혀있는 더러운 지하실에서 나(한탸)는 책과 폐지를 압축한다. 때로는 생쥐도 함께 압축한다. 작업하는 틈틈이 맥주를 마셔댄다. 그러면서 멋진 책을 찾아내고 한 자, 한 구절을 섭취한다. 그래서 나는 현자가 되었다. 교수와 성당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책들을 찾아다 준다. 당연히 작업속도는 떨어져 소장에게 책에 한눈을 파는 사람이라고 꾸중을 듣는다.

"너무 시끄러운 내 고독 탓에 머리가 좀 어질어질했다." 여기서 제목을 뽑은 것 같다. 혼자서 책과 대화하면 온갖 생각에 빠져 있는 모습. 때로는 예수나 노자 등 유명인의 환상을 보기도 한다. 사고는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확장되고, 서로 융합된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으며, 사고하는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
하수구의 회색 쥐들과 검은 시궁쥐들의 전쟁처럼 세계는 항상 적을 필요로 하고 내가 사랑하는  만차도 똥으로 더렵혀 지고, 나도 개똥 때문에 소녀에게 고백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마음 속에는 칸트의 별이 총총한 하늘이 있다.

 

부브니에서 대형 수압 압축기를 구경하면서 효율성만을 강조하여 책을 쓰레기 취급하는 광경을 보고  절망에 빠진다. 압축기 작업에서 물러나 백지를 묶는 작업을 하라는 명령을 받고 그는 책들과 함께 압축기로 들어간다. 죽어가면서 끝내 이름을 알 수 없었던 어린 집시 여자의 이름이 떠오른다. 일론카.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그래도 저 하늘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연민과 사랑이 분명히 존재한다. 오랫동안 내가 잊고 있었고, 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삭제된 그것이. 결국 삶은, 사랑은 그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이 아닐까. 책에서 의미를 발견해 나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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