石壕吏
暮投石壕村,
有吏夜捉人.
老翁踰墻走,
老婦出看門.
吏呼一何怒,
婦啼一何苦.
聽婦前致詞,
三男鄴城戍.
一男附書至,
二男新戰死.
存者且偸生,
死者長已矣.
室中更無人,
唯有乳下孫.
孫有母未去,
出入無完裙.
老嫗力雖衰,
請從吏夜歸.
急應河陽役,
猶得備晨炊.
夜久語聲絶,
如聞泣幽咽.
天明登前途,
獨與老翁別.
석호의 관리
저녁 무렵 석호촌에 머무는데
한밤중 징집하는 관리 들이닥쳤네
늙은 남편 담 넘어 달아나고
늙은 부인이 나와 문을 살피네
관리의 호통 소리 어찌 그리 사나우며
부인의 울음소리 어찌 그리 고통스럽나!
부인이 관리에게 하는 말 들었네
“셋째 아들은 업성으로 징집되었습니다.
장남이 보낸 편지 도착했지만
둘째 아들은 최근 싸움에서 죽었답니다.
산 사람 잠시나마 구차하게 연명하지만
죽은 사람은 영원히 끝이랍니다.”
“집안에 더는 장정이 없고
젖먹이 손자만 남아 있습니다.
아직 개가하지 않은 손자의 어미 있으나
외출할 때 성한 치마도 없습니다.”
“늙은 이 몸 힘은 비록 없지만
이 밤에라도 나리 따라가겠습니다.
급히 하양의 병영으로 달려가서
아마도 밥 짓는 일은 할 수 있을 겁니다.”
밤이 깊어 말소리 끊어졌지만
소리 죽여 흐느끼는 소리 들리는 듯하네
날이 밝아 길 떠나며
늙은 남편과 홀로 작별했네
*석호: 하남성 협현에 있는 마을 이름
*업성: 지금의 허난성(河南省) 안양현(安陽縣). 당시 안녹산의 양아들인 안경서(安慶緖)가 낙양에서 후퇴해 이곳에 근거지를 두고 있었다.
*하양: 지금의 허난성 멍현(孟縣)에 있다. 당시 관군이 이곳에서 안경서의 군대를 막고 있었다.
<해제>
759년 48세 때 작품. 동생들을 만나 보기 위해 낙양을 찾았던 시인이 임지인 화주로 돌아가는 길에 지은 시다. 당시 장안은 수복되었지만 반란군을 평정하지 못해 징병이 무자비하게 행해지는 상황이었다. 두보는 화주로 돌아가는 길에 전쟁의 절박한 상황과 가혹한 징집을 알리는 한편, 전란으로 폐허가 된 마을을 하나하나 시에 담았다. 이른바 ‘삼리’, ‘삼별’로 불리는 두보의 대표적 사회 고발 작품인 <신안의 관리 新安吏>, <동관의 관리 潼關吏>, <석호의 관리 石壕吏>, <신혼의 이별 新婚別>, <늘그막의 이별 垂老別>, <집 없는 이별 無家別>이 이때 지어졌다.
징병이 무서워 몰래 피하는 할아버지의 모습과 대신 부역에 나가겠다는 할머니의 목소리로 이루어진 이 시는 가장 극적인 상황을 부각해 전란이 가져온 재난을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