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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북

마음닦기/독서

by 빛살 2023. 12. 26.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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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북1,2/귄터 그라스, 정희창 역/민음사/2008.3.10.

 

이 작품은 역사적으로 전체주의(파시즘)의 온상이 되었던 독일 소시민 사회의 속물 근성에 대한 비판(2권 해설 497쪽)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주인공 오스카는 비판적 지식인으로 작가를 대신하는 존재다. 처음에는 기대를 갖게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모순을 드러내고 속물화된다. 자신의 아들로 생각하고 있는 쿠르트에게 팽이채로 맞고, 도로테아 간호사에게 발길질을 당하기도 한다.
태어날 때부터 정신적 성장이 완결되었고 세 살부터는 스스로 육체적 성장도 멈춰  난쟁이(94cm)를 선택한 것은 기존의 사회 질서(정치)를 거부한 것이다. 자신이 예수로 재탄생하여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고자 하나 헛된 망상에 불과했다. 21살 때 마체라트의 장례식에서 북을 버리고 다시 성장을 택했지만 121cm라는 한계에 봉착하고 등에 혹도 생긴다.

양철북은 지식인이 세계와 소통하는 수단이다. 작품에서 양철북은 기억을 되살려 기록을 도와주는 보조물,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는 수단, 밴드 활동 등 생계수단으로 쓰인다. 북을 빼앗으려고 하면 목소리로 저항하는데 폭력을 수반한다.
도입부에서 오스카가 북을 치면 아이들이 뒤를 따르며 부르는 "검은 마녀가 있느냐?"는 노래가 매우 암시적이다.

시점은 정신병원에 있는 현재의 나와 과거의 오스카의 시선이 겹친다.
보통사람과 다른 낮은 시선은 숨겨진 어두운 면을 주로 묘사한다.
주 배경은 자유시(일종의 도시국가)인 단치히(독), 현재의 그다니스크(폴란드)이다.

제1부
<폭 넓은 치마>
오스카의 외할머니 안나 브론스키의 감자색 네 벌의 치마와 여분의 한 벌은 모성의 이미지로 생명의 근원이라 할 수 있지만 라스푸틴적 요소로 변질된다.
<나방과 전구>
나방과 전구 사이에서 생겨났던 그 커다란 소음. 나방과 전구 사이의 대화가 나방에게는 최후의 참회이며, 일단 그런 식으로 전구를 무죄 방면하고 나면 다시는 죄를 짓고 열광할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듯이 날개 소리를 냈다.(63)
나방과 전구 사이에서 생겨났던 그 커다란 소음. 나방과 전구 사이의 대화가 나방에게는 최후의 참회이며, 일단 그런 식으로 전구를 무죄 방면하고 나면 다시는 죄를 짓고 열광할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듯이 날개 소리를 냈다.(63)
<라스푸틴과 ABC>
그레트헨 세일러와 오스카의 교과서, 라스푸틴과 괴테의 <친화력> - 디오니소스와 아폴로. 뒤에 마체라트 집의 벽에 걸린 히틀러와 베토벤으로 이어짐.

제2부(하)
<그리스도 승계>
오늘날 내가 가장 아름다운 가족 장면으로 여기는 것은 나의 조상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 광경이다. 집으로 돌아온 나를 진정으로 반기는 마체라트를 보면서 친근감을 느낀다. 안나 콜야이체크의 네 겹 치마의 상징성 회복.

제3부
<마돈나49>
그(라스콜니코프)의 견해에 따르면 나에게는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그 진공은 채워지지 않는다. --- 양철북을 다시 들다.
"지나가 버리는 것이란 없는 법이야. 만사는 되풀이 되는 것이지. 죄와 벌, 그리고 또 죄!"

<'양파 주점'에서>
눈물을 흘릴 줄 모르는 사람들(주로 인텔리 고객)을 위해 양파를 까면서 눈물을 흘리게 해 일종의 정화 기능을 하는 장소. 공감의 힘을 보여주는 '게르하르트와 구드룬'의 일화가 인상적이었다.

<30세> 마지막 장
30세 생일에 도로테아 살해범이 밝혀지고 나는 곧 석방될 것이다. 28세에 도주할 때부터 생긴 두려움이 검은 마녀로 내 주위에 나타난다.
"검은 마녀는 있느냐? 있다있다있다!"

1000쪽에 가까운 책의 두께가 일단은 압박감을 준다. 소설 초반부터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고 사건도 비합리적인 것이 많아 이해가 쉽지 않다. 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읽기가 쉬워진다.
읽고 난 후 소시민적 일상의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야만성(일상 속의 파시즘) 비판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도입부의 '검은 마녀는 있느냐?'로 문제를 제기하고  "검은 마녀는 있느냐? 있다있다있다!"로  끝을 맺는 것에 주제의식이 담겨 있다고 보았다.
또한 "천사의 강인함이 그 밑에 깔려 있긴 하지만, 울라의 찔끔거리기 잘하는 섬약한 기질은 나까지도 폭력을 휘두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했다.(2권 288쪽)" 라는 문장에서 "민주주의의 최대의 적은 '약한 자아'이다"라는 테오도오 아도르노의 말이 떠올랐다. 약한 자아가 엘리트주의의 선동가를 만났을 때 악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강한 자아만이 민주주의를 지키고 건강한 사회를 이룩할 수 있는 것이다.
강한 자아가 되기 위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죄에서 벗어나 항상 깨어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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